'2004/07'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04/07/09 이진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2. 2004/07/08 알리는 말씀
  3. 2004/07/07 밋밋한 글도...
  4. 2004/07/06 나보다 더 나에 대해 섬세한 사람들
  5. 2004/07/02 좌담, 대한민국은 균열중
  6. 2004/07/02 의견
  7. 2004/07/01
  8. 2004/07/01 안개를 헤치고
2004/07/09 11:50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진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이따금 받는다. 오늘은 이렇게 대답했다.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진경의 방법은 지적 편력, 혹은 지적 허세다. 편력이든 허세든 그가 알아서 선택할 일이지만 그런 방법이 지나치게 많은 존중을 얻는 건 우스운 일이다. 그 배경엔 그가 80년대 PD 운동권의 주요한 이론가였다는 다소 엉뚱한(그러나 한국이라는 기지촌 지식 사회에선 지극히 당연한) 이유가 있다.
이진경의 주 메뉴가 현실 변혁의 가능성을 차단당한 유럽 좌파들의 정신적 공황과 지적 허세(특히 프랑스의)의 결합에 의해 탄생한 탈근대 철학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탈근대철학은 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이진경을 비롯한 80년대 우등생 좌파들의 정신적 공황과 포기할 수 없는 지적 허세에 안성맞춤이었다.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엔 자의식이 강하고, 기약 없이 풍찬노숙하며 운동하기에도 너무나 유약한 그들에게 탈주, 횡단, 유목 같은 탈근대 철학의 개념들은 뇌까리는 건 모든 것을 실제로 청산하면서도 뭔가 진지한 탐색을 지속하는 듯한 외양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진경은 최근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라는 책을 ‘예약 이벤트’까지 벌이며 냈다. 그 책의 맑스주의적 가치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있지만, 그 점에 대해선 이미 맑스가 말한 바 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해 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하는 것이다.”
2004/07/09 11:50 2004/07/09 11:50
2004/07/08 14:21
040708.gif

고래가 아이들에에 어떤 편향적인 생각을 심어주려 한다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고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래가 보기에 오히려 온 세상이 아이들에게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편향적인 생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동무를 누르고라도 앞서야 한다.”거나 “인간적인 면보다는 학교 성적이 중요하다.”거나 “돈이면 뭐든 다 가질 수 있다.”거나 하는 생각들 말입니다. 고래는 단지 그런 현실에 편승하는 상품이 되지 않으려 할 뿐입니다. 고래는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게,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름답지 않게 봐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나 고래의 그런 생각은 이미 뒤틀려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편향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과연 편향적인 건 누구입니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고래가그랬어 10호, ‘알리는 말씀’에서)
2004/07/08 14:21 2004/07/08 14:21
2004/07/07 23:55
나보다 더 나에 대해 섬세한 사람들을 읽고 어느 독자가 보내온 편지. 당연히 "예, 알겠습니다." 답장했다.


하지만 저는 비록 가끔은 규항님의 글이 저의 "자위용"으로 오용되고 있을 경우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규항님의 글 때문에 세상의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거기에 대응하는 제 자세, 나아가서는 제 자식들에게(초등학생 큰아들, 이제 두돌 지난 딸래미) 바라는 사회구성원으로서 모습이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B급좌파"를 읽고나서 얼마 되지 않지만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일을 돕기 시작했고, 지금은 야학교사를 해볼까하고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리고 아이들 엄마에게도 아이에게 공부를 잘하기를 요구하거나 다른 아이들보다 우월하기를 갈망한다거나 또 이따금은 어린 딸자식에게 자기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요구받아왔을 여성으로서의 숙명을 강요하지 말기를 조심스레 부탁했습니다.
부디 뜻하신 "급진적인 글쓰기"에도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바라면서 규항님의 밋밋한(?) 글도 충분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2004/07/07 23:55 2004/07/07 23:55
2004/07/06 22:54
독자 편지를 읽다보면 이따금 ‘아 내가 그랬었지’ 되새기게 된다. 나보다 더 나에 대해 섬세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가.



예전에 규항님의 글들을 무척이나 열심히 읽었더랬습니다...
규항님의 글을 통해 제가 변화하고, 바른길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가방 한구석에 항상 B급 좌파를 넣어가지고 다녔었거든요...^^;
님이 쓰신 한 글을 일고 부끄러워져 더 이상 님의 글을 읽지 못하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규항님께서 자신의 글이 일부에게 자위의 수단으로 쓰이는 게 싫어 글을 더 급진적으로 쓰려 한다는 글이었을 거예요 아마...
굉장히 뜨끔하고 부끄러웠거든요...
님께 그만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 죄송한 나머지 더 이상 님의 글도 책도 읽을 수가 없었어요.
2004/07/06 22:54 2004/07/06 22:54
2004/07/02 18:11
유영주(사회) : 유력한 글쓰기활동가 두 분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뜻깊습니다. 최근 '전쟁세력'을 비판하는 두 분의 글도 여느 때처럼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데요, 김규항 씨는 작년 9월 <국익>을 통해 전쟁세력의 논리를 정확히 짚은 바 있고, 최근에는 <우리의 전쟁>, <유시민, 아비투스, 김태촌>,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 등의 글을 통해 일침을 가했고요, 진중권 씨는 <노혜경, 그런다고 땅에 스민 피가 지워지나?>, <김정란의 구주, 적그리스도>,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등의 글로 전쟁세력들의 이러저러한 논리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셨는데요, 전쟁과 전쟁세력을 보는 데 있어 두 분의 입장 차이는 없어 보이나 말하자면 구질은 상당히 다른 듯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맞서 젖 먹던 힘을 모아 싸우는 이라크 민중들, 그리고 고 김선일 씨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이 땅의 민중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나눠주시죠.

진중권 : 최근 인터넷 글쓰기를 잘 안 하려고 했는데, 원고를 끝내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김선일 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새벽에 속보를 보며, 크게 분노하고 황당했죠. 그래서 인터넷과 경향신문과 씨네21 등에 글 몇 개를 썼는데요, 지금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한 번 파병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일상에서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돼요. 파병세력의 논리를 파헤쳐 깨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차라리 대통령이 이회창이었으면 별 문제 없었을 거예요. 노무현이니까 파병에 반대해야 할 사람들이 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잠잠해하고 있는 거죠. 만약 이회창이었다면 파병 결정조차 지금처럼 쉽게 못 했을 겁니다. 사람들의 정치의식, 즉 개혁이면 개혁, 진보면 진보, 이런 가치에 의해 현실 정치가 강제되고 활용돼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인들에 의해서 활용 당하고만 있단 말이죠. 정치인들에 의해 포섭되어서 개혁이나 진보의 가치를 자기들 멋대로 입맛에 따라 활용되고 있는 거예요. 이 부분이 가장 가슴 아픈 대목입니다.

26일 촛불집회에 갔었는데, 민언련의 최민희 씨, 정말 짜증나더군요. 노무현이란 가치는 절대 불변의 가치예요. 노무현을 지지하는 데도 여기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이 따위 이야기를 한단 말이죠. 파병 철회가 노무현을 살린다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아주 짜증나거든요. 사람이 죽었는데 거기 앞에서도 아직 노무현 이런 얘기가 나오느냐 말이죠. 그런 식으로 얘기가 나오는 것들이 뭐랄까 굉장히 비정상적이에요.

김규항 : 고 김선일 씨 사건이 참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데, 그 일이 개혁의 기만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데 어떤 논리적 주장보다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들 개혁의 후퇴다, 변질이다 그런 말을 합니다. 하지만 실은 개혁이 그런 것입니다. 개혁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대중의 의식이 높아져서 권위주의 통치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배세력이 선택하는 자구책이거든요.

절차적 민주주의 같은 형식적인 문제들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진보세력을 대부분 체제내화하고 계급 문제나 분배 같은 실제적인 사회변화를 차단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독재를 사용하던 지배세력이 민주의 옷으로 갈아입고 지배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혁이라는 게 잘 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오랫동안 야만적인 독재에 당해왔기 때문에 독재만 아니면 좋겠다는 그런 의식이 있습니다. 수구 우파나 조중동만 공격하면 나머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게 있는 거죠. 탄핵 사태로 노무현정권이 민주주의의 순교자가 되었다가 부활하는 어이없는 상황도 바로 그런 거지요.

길게 잡아 87년부터 그런 상황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번 김선일 씨의 죽음을 통해 대중들은 개혁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고 개혁은 진보가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고 있습니다. 20년 가량 승승장구해 온 개혁에 근본적인 균열이 생기는 겁니다.

퇴진 구호, 파병 철회를 위해 외치는 것 당연

유영주 : 독재만 아니면 좋겠다는 의식이 개혁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연결되었다는 점을 말씀하셨고, 개혁의 비정상성과 근본적인 균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좀더 섬세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 이번 일련의 사태의 중심인 김선일 씨 사망 사건의 원인부터 따져보는 것이 순서일 듯 합니다. 한국 정부의 파병 방침이 결국 김선일 씨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태를 부르게 된 원인 진단을 어떻게 하느냐, 이게 쟁점이 되고 있는데요.

진중권 :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조희연 씨의 주장을 보면 미국에 초점을 맞추어야 되고, 미국의 부시를 낙선시켜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미국의 부시를 낙선시키느냐 당선시키느냐가 우리의 임무는 아니에요. 그건 미국 유권자들의 문제라는 거죠.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뭐냐면 파병이에요. 파병 결정을 누가 내렸느냐의 문제에요. 노무현정권이 내렸잖아요? 또 정부와 의회의 역할이 있을 수 있어요. 터키 같은 경우는 정부에서 파병안을 제출했지만 의회에서 부결시켜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청와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의회에서 부결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안 하는 거예요.

열린우리당 지금 다수거든요. 민주당 의원들 파병 철회 공약으로 내세웠잖아요? 민주노동당 의원들 원칙적 파병 반대론자들이고요. 합하면 거의 7:3이죠. 절대적 다수가 되는데 그런데 왜 안 하느냐 이말입니다. 파병 철회가 안 되었다는 것은 수구세력의 문제도 아니고, 조중동의 문제도 아니고, 미국 문제도 아니고, 순전히 열린우리당 문제에요. 그들이 원하면 파병 철회가 되는 거예요. 문제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탄핵 때 뭐라 그랬나요? 민주개혁을 위해서 다수를 만들어내자 그랬거든요.

유영주 :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노무현정권에 대한 태도 문제가 제기됩니다. 파병반대국민행동 안에서도 그렇고... 노무현 퇴진을 주장할 거냐 말 거냐 같은 논란도 그 연장에 있어요.

진중권 : 그런 논쟁 짜증나요. 왜냐하면 노무현 퇴진 구호 쓸 수 있어요. 문제는 뭐냐면 그건 슬로건에 불과한 거예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퇴진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고, 퇴진시킨 다음 무슨 대안을 갖고 있느냐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슬로건으로 퇴진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그 정도로 파병이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게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예컨대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의회주의 정당이거든요. 의회주의 정당 내에서 그런다면 그건 무책임한 말이 되니까요. 그들은 합리적인 시스템 내에서 게임의 규칙을 따라야 되거든요. 의회주의 규칙에. 그런데 시민단체라든지 밖에서는 내세우려면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잖아요. 그걸 갖고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네요.

전쟁은 철저한 이해관계의 반영일 뿐. '북괴가 내려온다' 공포 심리 조장

유영주 : 어제 민주노동당은 파병 일정 중단을 요구하는 입장을 표현했는데, 그런 맥락인 것 같고요. 국민행동이 향후 사업 기조를 제출한 걸 보면 파병 철회는 당연한 거고요, 그런데 그것 외에는 미국에 초점을 맞추거나, 외교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등에 무게를 두는 의견이 주된 기조거든요. 집회를 하는 모습도 추모 분위기로 하자, 시민과 함께 하는 기조로 하자, 이런 게 많이 강조되는데, 일면 당연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공세적인 대응을 자제하자는 것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집회 진행할 때 깃발 내리자는 이야기도 수월찮게 나오거든요. 이런 현상도 따져보면 노무현에 대한 태도와 연관되어 있지 않나 싶은데요.

김규항 : 아까 조희연 씨 이야기와도 연결되는데. 미국에 초점을 맞추자는 말의 정확한 뜻은 노무현정권을 옹호하자는 거예요. 국민행동의 주장도 그렇게 가는 것이죠.

진중권 : 시민 핑계 대지 말라고 그래요. 자기들의 의식의 한계를 시민들의 의식의 한계로 말하지 말란 말이에요. 왜? 국민들의 60%가 반대하고 있어요. 6:4로 파병에 반대하고 있는데 자기들의 정치적 견해로 시민 전체의 의사를 보지 말라는 거죠.

김규항 : 그런 맥락이 자발적으로 모인 대중들의 의사를 보편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현장 분위기는 그렇지 않아요. 탄핵 반대 때는 분위기가 일원화되는 게 있었어요. 그 때는 전쟁반대 깃발이나 피켓이 끌어내려진다거나 해도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순수한 민주수호의 의지를 악용하지 말라 그런 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옆에서 따로 집회도 하고 너희가 왜 우리 의사를 왜곡하느냐 이런 식의 국민행동에 대한 비판도 많이 올라와요.


진중권 : 두 가지가 있는데, 이 사람들이 흔드는 게 초점을 미국으로 돌려놓는 겁니다. 우리한테 중요한 건 이라크 전쟁 테마가 아니라 파병 테마예요. 그게 핵심인데 논점을 비껴가는 거고, 두 번째는 외무부 라인에서 책임을 추궁하는 게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본질은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파병을 계속 하는 한 김선일 씨를 살리는 방법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뭐라고 하냐면 파병을 하고도 외교력과 정보력이 있었으면 김선일 씨를 살릴 수 있었는데, 외교력과 정보력에 문제가 있어서 김선일 씨를 살리지 못했다는 말이에요. 반기문이 물러가야 한다 이런 이야기거든요.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는 거죠. 파병 결정은 머리와 몸통이 있는데 꼬리만 자르고 꼬리가 아프다고 바둥바둥 거릴 때 사람들의 그 관심을 끌어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핵심적인 건 파병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김선일 씨가 살아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을 보세요. 미국이 외교력이 부족합니까, 정보력이 부족합니까? 닉 버그 씨도, 다른 사람도 참수되었잖아요. 외교력과 정보력의 문제가 아니에요. 뭐냐면 파병을 했기 때문에 당하는 문제거든요. 이제 곧 국정조사로 갈텐데 자기들은 그냥 외무부만 날리면 되거든요. 그리고 한나라당 놈들은 자기네가 파병을 주장해서 김선일 씨를 죽인 공범인데, 쉽게 말하면 주범과 공범에 의한 국정조사라니 결과는 안 봐도 뻔한 거예요.

김규항 : 설사 외교나 정책상의 기술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더라도 24시간이라는 시한이 주어졌을 때 굳이 그런 공격적인 파병 의사를 밝힌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 무슨 전화를 받았니 안 받았니, 누가 있었다느니 없었다느니 그런 건 우스운 이야기지요.

진중권 : 그렇죠. 외무부에서 미리 알았으면 어쩔 거냐는 거죠. 그러면 파병 안 할 거냐 라는 겁니다.

김규항 : 심지어 외무부 직원들의 서비스 태도를 이야기하는데 한국에서 고시 출신 공무원들의 태도야 구제불능이지만 그게 다 본질을 숨기려는 개수작입니다. 그런 이야기로 외무공무원들의 대민 서비스가 좀 달라지긴 할 거예요. 그거 외에 달라질 건 없죠.

진중권 :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게 이런 거예요. 파병론자들이 얘기하는 필연성이라는 게 여태까지 아무런 논리가 없어요. 예컨대 말은 안 하지만 파병을 안 하면 부시가 열 받는다는 거예요. 부시가 열받아 북한에 폭격을 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러면 김정일이 열 받아서 남한에 핵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거예요. 만화같은 시나리오거든요. 그런 식의 시나리오를 은근히 흘리는 거죠, 사실 주장은 못 해요. 워낙 황당하니까. 이라크에서 미국이 수렁에 빠져있는데 북한하고 무슨 전쟁을 할 수 있겠어요. 또 다른 전쟁은 말도 안 되요. 생각을 해 보세요. 미국의 동북아 안보전략이 대한민국에서 3천명 보내느냐 안 보내느냐에 따라 확 달라진다는 게 말이 되요?

온갖 왜곡 논리 난무, 파병 철회만이 김선일 씨 살릴 수 있었던 것

김규항 : 아주 봉건적인 생각이죠. 옛날 삼국지에서처럼 어떤 나라가 지도자의 인격이나 성격에 의해 좌우되고, 의리나 배신이 난무하는, 그래서 막 전쟁을 하기도 하고... 옛날 이야기 보면 그런 게 많잖아요. 그런데 현대에서 전쟁이라는 것은 철저한 이해관계에 의한 대대적인 상행위 같은 것이거든요. 요즘은 조폭도 그런 이유로 전쟁을 하진 않아요.

진중권 : 그러니까 무슨 뭐 열 받아서 3천명 안 보낸다고 쯧쯧...

유영주 : 그런 논리가 실재 대중들에게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문제일 텐데요.

진중권 : 공포심리죠. 반공 논리 있잖아요. 이게 북괴가 내려온다의 새로운 버전이에요. 국민들에게 막연한 공포감 조성해놓고, 그런데 막상 까 보라고 하면 못 하잖아요? 우리가 파병 안 하면 미국이 정말 뭘 어쩔 건데, 한 번 생각해보자고요.

김규항 : 미군 철수 문제도 우리가 약간씩은 이견이 있지만 대중적인 이해 자체가 상당히 낮은 편이에요. 실재 정보 전달이 정확하게 된다거나 리영희 선생 같은 분의 이야기가 좀 더 편하게 전달되고 한다면, 대중들의 미군 철수 지지율이 높아질 수 있을 텐데, 지지율이 낮은 것은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그런 공포에 기반하는 거죠. 그런 게 여전히 야비하게 작동되고 있죠.

진중권 : 한국이 파병을 안 하게 되면 미국과의 경제도 단절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의 국가 시스템이 옛날 그런 시스템도 아니거든요. 지금은 경제와 정치가 따로 놀아요. 터키가 파병 거부했는데 거기랑 단절합디까? 중남미 국가들 파병 거부했다고 고립되었습니까? 그 나라들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 굉장히 높잖아요. 유럽은 미국보다 강대국이라서 파병을 거부했어요? 중남미 국가들은 우리보다 강대국이라서 파병을 거부했냐 말이에요. 말이 안 돼요. 파병은 한국과 미국의 외교 문제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한국 내부의 문제죠. 친미파라는 놈들, 그런 놈들에게 쉽게 투항한, 또는 그런 놈들을 은근히 이용해먹는 노무현정권이 문제라는 겁니다.

386 개혁세력 원래가 그런 애들, 반독재가 진보인줄 알아

유영주 : 일반 시민들은 소위 386, 운동권 세력들이 돌아서게 된 배경을 궁금해합니다. 전대협을 했던 사람들이고, 늘 반미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인데... 친미파는 워낙에 그렇다고 치고요, 이른바 386 개혁세력들이 그렇게 급속하게 바뀌게 되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진중권 : 다 바뀐 거죠. 예컨대 옛날에 임종석 씨 만났을 때 진보세력들이 정치적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예요. 베를린에 있을 때 많은 이야기 나눴는데요, 정말 좋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민주당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황당해서.... 그 사람들 생각 자체가 그렇더라고요.

김규항 : 임종석 같은 경우는 반독재면 진보라고 생각하는 무지가 있는 거죠. 하여튼 학생운동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된 놈들은 그 자체로 끝난 겁니다. 지나치게 그 사람들의 신념을 고려해서 분석할 필요는 없어요. 다들 당리당략과 자기 정치적 입지에 의해서 그렇게 가고 있는 거죠.

진중권 : 총선 전에는 소수여당이었죠. 총선 전에는 개혁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나라당 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잖아요? 그리고 그들이 소수정당일 때는 열린우리당이 파병에 전부 반대해도 파병은 된단 말이죠. 총선 끝나고 이젠 다수당이에요. 문제는 자기들이 결의하면 파병이 되요. 상황이 바뀌니까 태도가 바뀐 것이죠.

유영주 : 최근 임종석 대변인의 발언이나 신기남 의원이 발표한 글도 그런 맥락일 텐데, 특히 신기남 의원이 발표한 글을 보면 개혁세력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황당하게 받아들이거든요.

진중권 : 황당하죠. 특히 '테러리스트에게 굴복하면 안 된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게 테러리스트가 내건 요구 자체가 문제냐는 거예요. 요구 자체는 정당하거든요. 외국군 철수잖아요. 그걸 요구하는 방식이 문제이긴 해요. 그런데 보세요. 예컨대 터키에서는 풀려났거든요. 왜냐하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어요. 사람을 살렸단 말이죠. 미국에 군납 안 하겠다고 한 거잖아요.

김규항 : 처음 참수 당한 미국사람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당한 사람들은 일관성이 있어요. 미국의 군수업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아주 유감스럽지만 김선일 씨가 일하던 회사도 그 쪽의 일을 하기 때문에 저항세력의 입장에서 이 사람을 순수한 한국의 민간인으로 볼 수 없는 거죠.

진중권 : 한국이 추가 파병만 안 한다고 했어도 그 선에서 해결되었을 겁니다. 일본도, 터키도, 이태리도 그렇고, 돈을 주고 빼냈거든요. 터키는 아예 군납 업체를 포기한다고 했거든요, 아마 김천호 사장 문제일 수도 있어요. 사업을 포기하고 떠나라 했는데 못 한다 그러고 협상하는 중에 추가 파병 결정이 나버리니까 완전히 상황이 달라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항세력들의 요구 수준도 바뀐 거죠. 이제 한국군 오지 말라는 겁니다. 신기남 같은 경우 옛날에 뭐라고 했냐하면 한국의 외교라인과 안보라인은 친미세력의 문제다, 솎아내야 한다고 했거든요?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거죠. 지금은 슬쩍 입장을 바꾼 거죠. 한국과 미국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라는 겁니다.

김규항 : 유시민 씨가 전에 그랬어요. 노무현이 처음에 파병하겠다니까 원래 대통령은 그렇게 하는 거고, 국민들은 반대하는 거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반대할 수 있도록 힘을 몰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후 유시민 씨의 전쟁에 대한 입장 변화를 보면 참 질이 안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유주의자라는 사람이 진보정당 찍으면 사표라는 소리나 하질 않나...

진중권 : 자기들도 먹고살아야겠죠. 이미 정치가가 되었다면 끝난 겁니다. 유시민도 옛날에는 좌파였다가, 방법적 자유주의라고 하다가, 지금은 자유주의도 아닌 허접이 되어버린 거죠. 왜냐하면 당 안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가 먹고사는 문제가 생기는 거고 그 안에 들어가는 자체가 잘못이에요.

김규항 : 민주화 운동 출신이라고 우리가 말하잖아요? 민주화 운동이란 게 우리나라에선 시민이라는 말과 함께 굉장히 두루뭉실하게 쓰이는데, 민주화 운동에는 두 가지 스펙트럼이 있었죠. 70년대엔 김대중, 윤보선, 김영삼 이런 사람들이 하는 절차적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80년대 초중반 이후에는 근본적인 민주화 운동이 있었죠.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실제로 민주화운동 성원들 대부분은 급진주의자들이었어요.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군사파시즘이 물러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서 그런 사람들의 상당한 부분이 현실적 선택을 하게 되죠. 그것이 제도 사회 주류 사회로 들어가는 것이고, 지금 정치 쪽만 부각되고 있는데 사실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벤처, 영화, 연예 사업 등을 보면 운동권 출신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사람들의 변신, 그 행로는 아주 비슷하고 일관되죠. 그들은 변화된 세상의 개혁 진보세력을 자처합니다. 예술계도 마찬가지고, 기업계도, 정치계도 마찬가진데 이전의 정치인들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차이라기보다 아주 모호한 윤리나 도덕의 차이, 비리에 연루되지 않았다거나 구 정치의 파벌에 휩싸이지 않았다거나 그런 것인데, 그런 차이들도 급격하게 없어지고 있습니다.

개혁세력 정체 드러나. 한나라와 열우당 합당해도 문제없어

유영주 : 개혁세력과 정치적으로 단절하고, 그 이데올로기나 영향으로부터 대중들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확대해서 봐도 될까요?

진중권 : 열린우리당이 잘해주고 있잖아요.

김규항 : 이젠 개혁세력이 숨길래야 숨길 수도 없어요. 정체가 드러나는 거죠. 탄핵 때만 해도 수구우파와 개혁우파의 차이가 뭐냐는 말이 잘 안 먹힌 게 민주세력과 독재 세력이니 정서적으로는 굉장한 차이가 있는 거죠. 그런데 그건 다 과거의 일일 뿐이죠. 엄밀히 따져보면 민주화 운동 출신이냐, 독재 출신이냐 이외에 경제, 정치, 외교, 노동정책 모든 부분을 다 봐도 수구 우파와 개혁 우파의 실제적인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진중권 : 둘이 합당해도 돼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김규항 : 탄핵 때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좌파의 억지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는데 지금은 전혀 달라요. 대중들이 광장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거든요. 무슨 진보 교양을 하고 의식적인 학습을 해서 그 사람들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어 이거 가짜구나, 이거 우리 편이 아니구나', 이렇게 스스로 생각을 해서 달라지니까 이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거죠.

진중권 : 유시민이 그랬잖아요. 몇 달 전만 해도 파병 반대를 외쳐서 노무현에게 힘을 몰아주자 했는데 이제는 파병 찬성해서 노무현에게 힘을 몰아주자 그래요. 힘을 몰아주자는 방식이 바뀐 건데, 자기모순에 빠지는 거죠. 아무리 사람들이 광기나 열정적으로 정당을 지지한다 해도 논리적 모순을 담고 살기는 힘들거든요.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한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그러고, 왜 안 하냐고 따지니 전문가들이 튀어나와 안 되는 근거를 대더라고요. 그럴 거면 아예 총선 전에 약속이나 말던지... 이런 게 대중들에게 폭로가 되고 있는 거죠. 보통 사람들이 논리적 모순을 따지면서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워낙 중요한 사안에서 모순이 딱 드러나니까, 자기 정신분열증에 걸리지 않고서는 유지가 안 되는 거예요.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에서 내걸 수 있는 개혁적 정치인의 최고 상태가 노무현이었거든요. 이제는 더 이상 대중들에게 더 안 먹힌다는 겁니다.

김규항 : 개혁세력의 승승장구가 최근 2-3년간 지나치게 원활했어요. 그러면 자기 정비에 소흘하게 되죠. 유시민 같은 사람의 논리적 파탄은 200자 원고지 한두 장으로도 정리가 돼요.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사람 참 나쁜 사람이구나 알 수 있는데 그런 상태로 개혁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으니 세상에 겁나는 게 없어진 거죠. 그런데 그것이 균열되고 폭로되기 시작하는 시점이죠. 얼마 안 가 유시민이 경찰 호위를 받는 날이 곧 올 겁니다. 유시민은 대중 연예인의 쇼맨쉽으로 성장을 했어요. 국회에 백바지 입고 나가고, 울면서 끌려나가고 하는 쇼로 이미지를 유지했는데, 지구당 사무실을 경찰이 지키고 이러면 완전히 구겨지는 거죠. 순간이에요.

진중권 :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건 정신분열증 같아요. 최민희 씨 이야기 보세요. "노사모 여러분 노대통령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 자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잖아요. 내가 그 말을 듣고 최민희 씨가 그 사람들한테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언지 궁금했어요. 우리가 파병 반대 시위에 나왔는데 그게 왜 남들한테 감사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내 목숨 때문에 나온 거예요. 내가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라는 소리를 듣고 이 사람들 정말 끔찍하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건 변태라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김규항 : 그거야 무조건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고 여기에 나와 주었으니 당신들 참 훌륭하다 그런 말 아니겠어요.

진중권 : 나는 굉장히 거슬렸던 게 노무현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나와서 감사하다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니까 나와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건 당과 당 차원에서 도와주러 온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시민의 문제이고 시민 모두의 생명이 걸린 문제거든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마치 노무현을 지지하는 게 대단한 고려 변수가 되는 양 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김규항 : 그것이 현재 광장의 형편이에요.

개혁에 근본적인 균열 발생. 좌파, 이제 목소리를 내야

유영주 : 제가 보기에 그날 집회에서 최민희 씨 발언에 대중들의 반향이 가장 컸던 게 사실입니다.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선동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이 점을 잘 봐야 하는데, 아까 균열이라 표현하기도 했고, 정신분열이라고도 했는데, 바로 지금 대중들의 상태가 이 정점에 와 있다는 거거든요. 노사모 참가자에게 감사하다는 발언이나 사회자가 "노무현 대통령님 파병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외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동요와 혼란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선일 씨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상태가 이 지점을 경과하고 있지 않나 싶거든요.

김규항 : 아주 중요한 지점이죠.

진중권 : 이제 목소리를 내야 돼요. 그 사람들이 어떤 견해를 갖는 게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옳은 소리라도 낯선 것은 거부감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사람들이 안 받아들이거든요. 이제 우리 목소리를 내야 되고, 그 다음에 왜 문제인지 계속 이야기해줘야 한다는 거죠. 지금 이런 상황에서 또 그렇게 나가면 저 사람들 선거 때 또 그렇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김규항 : 개혁 비판의 목소리가 반향이 적은 시점이 있고, 큰 시점이 있는데, 균열이라고 표현하는 건 때가 무르익었다는 겁니다.

진중권 : 그 때가 언젠가는 와요. 본질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어요.

김규항 : 이 지점에서 좌파가 대중적인 차원에서의 정치적인 소통을 본격화해야 하는데, 좌파가 20여 년 이상 대중들에게서 오랫동안 고립, 배제되어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대중과의 소통 감각도 없어져서 성명서를 한 장 써도 안 읽히게 쓰고 그러죠. 그래서 좌파의 본령에 속해있지 않은 좌파들의 개인적인 활동이 부각되는 측면이 있었어요. 이젠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다들 대대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유영주 : 이 균열의 흐름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더 잘 낼 수 있는 방법적인 부분을 좀 이야기 해보죠.

진중권 : 일단 매체에서 밀리니깐... 정치적이라는 것이 옛날처럼 총칼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설득력을 통한 지배인데 일단 우리는 매체가 없잖아요? 좌파 매체가 하나 있어야 돼요. 옛날처럼 오거니제이션 하던 시대는 지났거든요. 네크워크인데,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노사모가 먼저 보여줬죠. 지금 언론이 굴러가는 걸 보면 조중동이 있고, 그 반대편에 오마이뉴스와 한겨레가 있어요. 거기에 방송이 끼어 있어요. 이렇게 되면 아젠다는 항상 이들 사이에서 나오게 된다는 거죠. 치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요. 그렇다고 했을 때 사회적 아젠다를 제기할 좌파 매체가 꼭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 싸움들이란 게 사람들이 식상해하고 있어요. 다르지 않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노무현이 한 걸 보면서 한나라당이 했을 법한 일은 다 했거든요. 그 다음에 다시 노무현이 중요한 결정을 하면 다 조중동이 키워줘요. 그래서 조갑제가 대통령에게 "밥 먹으러 오세요, 밥 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어차피 노무현이 이야기한 중요한 결정은 조중동이 다 편들어줬다는 거예요. 이제 남은 것은 의석 수 싸움밖에 없어요.

김규항 : 제가 노빠에 대해 경멸적인 표현을 한 적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개혁적, 도덕적으로 보이는 정치인에 대해 감성적으로 몰입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워낙 반세기 동안 야만적이고 더러운 정치에 당해 놔서 그렇지요. 그러다보니 정치의식이라는 게 자신의 계급적인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이념적으로 나뉘어져야 하는데 도덕이나 윤리 같은 모호한 기준으로 나뉘어집니다. 그 틈을 개혁이 파고들어 승승장구해왔는데 그게 균열이 나고 있는 것이죠. 김선일 씨 사건이 대중적인 계기가 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더 이상 가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의 갈등이라는 레퍼토리가 식상해진 데다,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에 의한 서민 대중들의 삶의 변화는 도저히 속일래야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진중권 : 사람들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게, 대통령은 선출할 수 있지만 권력은 절대 선출할 수 없어요. 대통령 노무현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고, 외교 안보라인들이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한 노무현이 됐든 이회창이 됐든 변할 수가 없는 거거든요. 대통령 열심히 뽑고 자기들은 뭔가 개혁했다고 믿을지 몰라도 요번에도 돈을 주는 구조가 똑같잖아요. 그놈들이 돈을 주거든요. 한나라당에도 주고, 열린우리당에도 주고. 돈 나오는 구조가 똑같고, 정책도 똑같아요. 어차피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이란 말입니다. 예컨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하면 평당 3백만 원이 다운돼요. 30평이면 1억이에요. 20평이면 6천만 원인데 그걸 서민이 내느냐, 저들이 내느냐, 여기서 누구 편을 들 것이냐는 문제죠. 가진 자들의 편을 들어줬거든요. 가진 자들이 로비를 하고 인력을 충원하고, 이들을 위해 굴러가는 체제가 계속되는 거예요.

유영주 :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랄까, 그런 수준의 고민도 있어야 할텐데요.

진중권 : 맞아요. 우리가 지금 좌파든 진보든 간에 국방과 외교가 없어요. 외교와 안보 쪽에 전문적인 식견과 안목을 가진 사람들 키워내야 되요. 이걸 어떻게 할 노하우가 없으니까 저들이 거저 먹는 거죠. 노무현정권의 한계가 그거예요. 엔엘 애들 썼거든요. 그런데 맨날 반미만 이야기했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거예요. 이러니까 미국놈들이 거저먹고 그랬죠. 민주노동당은 장학금을 주고 유학을 시켜서라도 인력을 키워야 돼요. 인력이 있어야 배치도 하고 감시도 하고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경제도 실물경제를 읽어야 해요.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게 좋다는 이야기 백날 하면 뭐해요. 무지는 아무 도움이 안 되거든요.

웬만한 논객들 역사적으로 할 말 다해, 역사 진전시킬 새로운 발언 필요

김규항 : 중권 씨 이야기에 동의하지만, 돌아보면 진보 세력에게 지난 10년 간의 형편이란 게 개혁 세력에 몰려서 굉장히 수세적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부족한 준비가 나오는 건 당연한 것이죠. 문제는 이제부터인데 개혁세력이 말하는 개혁들의 실제적인 결여부분들을 파고드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령 정치개혁 언론개혁이 갖는 대중적인 파장력은 커요. 그런데 그 기준이 뭐냐면 정치개혁의 경우 주로 도덕이나 개인 윤리 문제로 국한하고. 낙천낙선운동은 해도 국보법에 대한 입장 이런 게 아니라, 입건된 적 있느냐, 돈 받은 적 있느냐 이런 거거든요. 무슨 학교 도덕선생 뽑는 것도 아니고 계속 그런 식으로 몰고 가요. 언론개혁도 조중동에 국한함으로써 그 외에 오마이뉴스나 한겨레가 갖는 반동성 같은 것은 아주 도외시되는 이런 부분도 이제는 면밀하게 부각시켜가야 합니다.

진중권 :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는 건 사실이에요. 논객들 보세요. 저쪽 논객들 강준만 유시민 저 꼴 됐지, 노혜경, 김정란 저 꼴 됐지, 조희연이라는 사람도 얼굴 들고 다니겠습니까. 웬만한 논객들 역사적으로 할 말 다했다는 겁니다. 이제는 새로운 발언이 역사를 더 진전시켜야 해요.

김규항 : 근래 시민운동 쪽에서 급진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물론 그 중엔 사회변화에 조응하려는 것도 있지만 그 보다는 시민운동이 대중들의 의식 수준을 더 이상 선도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한계가 있는 거죠. 시민운동의 기여를 무작정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중권 씨나 나나 강준만 5중대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그 긍정적인 부분에 진지하게 대응했었죠. 그러나 한국에서 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주요한 사회적 역할이 진보운동을 체제내화하고 진보세력을 고립 배제하는 것이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의 한계가 왔다는 건 이젠 좌파적인 차원이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게 없게 된 상황이라는 거죠. 문제는 좌파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건데 다들 힘을 모아 노력해야겠습니다.

유영주 :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용하기 위한 좌파 운동의 고민도 많이 가고 있어요. 운동의 흐름이나 대중적인 조건, 상황을 봤을 때, 지금 대중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균열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패러다임을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중요하게 제기되는 시기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자기 발언의 역사를 갖는 사람들 중에 살아있는 사람들, 특히 앞으로 두 분의 발언의 무게도 더 커지는 거 아닌가 싶고요, 분투를 당부드리면서, 오늘은 이 정도로 일단락 하겠습니다.
2004/07/02 18:11 2004/07/02 18:11
2004/07/02 00:19
요즘 누가 내 의견을 구해오면 하는 '모범 답변'이다.

"새롭게 할 이야기는 없고, 제 블로그에서 글을 찾아보시지요. 검색창에 '개혁' '탄핵' '국익' 같은 단어를 넣으면 일이 쉬울 것입니다."
2004/07/02 00:19 2004/07/02 00:19
2004/07/01 12:52
왜 알 만한 사람들이 '개혁의 변질'이니 '개혁의 후퇴'니 하는 걸까?
그게 개혁의 본질이라는 걸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텐데...

그 놈의 잘난 '대중보다 반보 앞' 전략 때문에 그러는 걸까,
그 전략을 핑계로 지식 연예계에서의 생존을 도모하는 걸까?
2004/07/01 12:52 2004/07/01 12:52
2004/07/01 00:38
조중사가 퍼스트 기타를 치는 밴드가 8월에 공연을 하는데 객원드러머로 한 곡 연주하면 어떠냐 한다. 세상은 갈수록 지랄 같고... 그러마고 했다. 기왕이면 센 걸 하자고 했더니 비너스(블랙홀 버전)를 하란다. 그런데 전체 레퍼토리가 영 마음에 안 든다. 밴드의 성격으로 볼 때 한국 록의 고전들을 틀로 하는 게 좋겠다 싶다.

일본인 밴드 곱창전골의 앨범, 안녕하시므니까(1999)처럼 말이다. 안녕하시므니까는 산울림, 송골매, 신중현의 곡들과 창작곡으로 되어 있다. 최대한 원곡을 훼손하지 않는 리메이크, 7-80년대에 실재했던 곡인가 싶은 창작곡, 기타 둘 베이스 드럼의 4인조 체제, 스튜디오 가공을 절제한 사운드... 앨범은 고전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하다.

오랜 만에 듣고 있으니 좋은데 안개를 헤치고 즈음에서 한숨이 나온다. 요즘은 뭘 해도 그렇다.
2004/07/01 00:38 2004/07/01 0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