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5/04 16:31
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20년 전 어느 날, 3학년 P가 '영감'(교련 선생)을 폭행했다. 총검술 수업 중에 '통제'에 따르지 않던 몇몇을 영감이 불러내어 기합을 주었는데 그 가운데 P가 목총으로 영감을 친 것이었다. 체육 수업 중이던 나는 그 일을 목격했는데, 영감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해 있고 P는 여남은 명의 급우들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고 있었다. 한참 후 P는 갈비 두 대가 부러진 채 병원에 실려갔고 학교는 P의 갈비가 되붙기 전에 그를 학적부에서 파냈다. 3학년 대표 몇몇이 영감의 집을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했고 영감은 다시 총검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19년 전 어느 날, 나는 '빠가사리'(수학 선생)가 수업 중인 교실 문짝을 걷어찼다. 급우들을 대신하여 한 짓이었지만 와장창 문짝이 넘어가면서 유리 조각이 튀고 사위가 정적에 휩싸이자 나는 모든 게 내 문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주먹과 발은 물론 걸레 자루, 걸상까지 동원한 구타가 시작되었다. "니 진짜 안 빌래." 빠가사리는 무조건 빌 것을 요구하며 나를 때리고 자빠트렸지만 나는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동작을 거듭할 뿐이었다. 그것은 전투였고 수백 개의 눈알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맞서 칠 수 없다면 그저 버텨서라도 이겨야 했다. 수업 시작종이 두세 번쯤 더 울리고서야 그 지루한 경기는 끝이 났다. 탈진한 빠가사리가 내일을 기약하며 복도 끝을 돌아 나가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피가 고인 입안에서 살점들이 돌아다니고 교실 바닥이 파도처럼 넘실거렸지만 나는 녀석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녀석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가와 피를 닦아주거나 회칠갑이 된 교복을 털어 주었다.

얼마 전 어느 고등학교에선가 학생의 뺨을 수십 차례 때리던 선생을 학생들이 경찰에 신고해서 잡혀가는 일이 일어나 세상이 무너지는 '교권'을 한탄하고 있을 때, 나는 20여 년 전을 추억했다. P는 선생을 팼고 나는 교실 문짝을 찼지만 그 차이가 몰매와 박수라는 결론의 차이를 낳은 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별명의 차이, '영감'과 '빠가사리'의 차이에서 나온다. 학생들에 의한 선생의 별명은 괜스레 착안되는 게 아니며 매우 긴 시간적 공간적 경험의 공유에 의해 만들어진다. 선생의 별명이란 대개 그 선생의 인간적인 등급인 것이다. 영감은 총검술이나 가르치는 시시한 존재였지만 매우 기품 있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빠가사리는 3학년 수학을 맡는 실력자였지만 악취가 나는 사람이었다. P가 아니라면 누구도 영감을 때리지 않았겠지만,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빠가사리가 수업 중인 교실 문짝을 걷어찼을 것이다.

선생이 학생을 때릴 권리를 '교권'이라 부르는 일은 폭력으로나 권위와 가치를 유지하려는 파시즘이다. 교권이 '사랑의 매'를 전제로 한다 해도 그 매가 사랑의 매인지 아닌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건 역시 학생이다. 급우가 맞는 과정을 지켜본 학생들이 경찰을 불렀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의 매가 아닐 가능성이 많다. 20년 전 선생을 때린 급우에게 몰매를 놓은 학생들과 19년 전 선생이 수업 중인 교실 문짝을 걷어찬 급우에게 박수를 보낸 학생들, 그리고 오늘 어느 교실에서 한 선생을 지켜보는 학생들은 전적으로 같다. 20여년 전 학생을 때리던 선생과 오늘 학생을 때리는 선생이 전적으로 같듯이 말이다. 양심과 정의를 가르치는 일이 학생의 인생을 그르치는 일이 되는 마당에, 선생이 단지 선생이라는 이유로(영감이든 빠가사리든) 똑같은 권위를 부여받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따져야 할 일은 선생과 학생 사이의 권위적 질서가 아니라 인간(선생이라는)과 인간(학생이라는) 사이의 인격적 질서이며, 지켜야 할 건 '교권'(선생만의)이 아닌 '인권'(선생과 학생의)이다.

후일담 : 졸업 이듬해, 그러니까 17년 전 어느 날, 나는 버스에서 빠가사리와 마주쳤다. 그를 발견한 내가 그래도 은사라고 다가가자(순진한 건가 노예근성인가) 빠가사리는 황급히 버스를 내려 도망쳤다. '교권'을 곱게 보기엔, 나는 너무 치명적인 경험을 가진 셈이다. | 씨네21 1999년_4월
1999/05/04 16:31 1999/05/04 16:31
1999/04/20 16:30
전북 태인이 고향이지만 아버지가 군인(공군 하사관)이었던 덕에 셀 수 없이 이사를 다녀야 했다. 전라 경상 충청 경기 할 것 없이 남한에서 비행장 있다는 고장은 다 살아 봤고 그 고장에서도 이런저런 형편 때문에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했으니 기억하는 이사 횟수만 스무 번은 넘는다. 여섯 살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았던 대구는 매미가 다닥다닥 붙은 사과나무의 환영과 가슴 아린 첫사랑(!)의 추억으로 남은 곳이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가리켜 말하곤 했다. "김 상사 네는 전라도 사람 같지 않아."

그 희한한 칭찬은 어린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그런 '칭찬'의 반복은 나로 하여금 전라도 사람이 어떤 큰 죄를 가진 사람인 모양이다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아버지에게 그 일을 따져 묻는 게 예의가 아니고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알아챘음은 물론이다. 말하자면 나의 성장 과정은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 아닌 고장에서 사는 방법을 체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게 뒤집힌 건, 스무 살 무렵이다.

머리는 텅 비고, 반항기만 가득했던 내게 반역으로 점철한 전라도의 근현대사가 갑자기 다가왔다. 머리통을 동학농민전쟁의 역사로 채워가며 나는 난생 처음 겪는 지적 체험에 감격했다. 내 어린 시절 눈에 담았던 그 산과 벌판, 그리고 내가 걷던 길들이 그대로 동학군의 땀과 피가 서린 곳이었다니, 와. 그 뒤로 나는 전라도 사람임을 자랑하게 되었다. 묻지 않아도 내가 전라도 사람임을 밝혔고, 특히 전라도 출신을 꺼릴 법한 상대나 자리라면 반드시 내 고향을 밝혀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려하곤 했던 것이다.

'피해 지역'의 지역 감정도 좀더 엄격하게 조절되어야 한다는 깨우침을 얻은 건 최근이다. 시사잡지 기자인 B는 처음 만난 술자리에서 대뜸 내 글 칭찬을 했다. 문장을 인용까지 해가며 하는 소리라 빈말은 아니었지만, 사람들도 많고 해서 점잔빼고 앉았다가 대신 고향을 물었다. 말씨로 보아 전라도 사람이 분명했기에 그걸 확인해서 우호감을 나누려는 수작이었다. "몰라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B는 정색을 하며 대답을 거부했다. 한참 후 다른 곳으로 술자리를 옭긴 후에야 나는 아까 일을 물었다. B는 대답했다. "짐작대로 나는 광주가 집이고 얼마 전엔 5.18 보상금도 받았다. 하지만 전라도 사람끼리 배타적으로 뭉치고 하는 건 딱 질색이다."

전라도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이 나라의 지역 문제는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앉은 듯 싶지만, 그럴수록 이 나라가 단일 민족인 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고향 좀 다른 것 가지고도 이렇게 못 잡아먹어 난리인 사람들이 인종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몇 년 전 르완다에선 인종청소로 100만이 죽었고 오늘 유고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니할 말로 이 나라가 여러 인종이었다면 진작에 수백만은 죽어나가고도 남았을 테니 말이다. 전라도 문제는 빼고라도, 연변 동포에게, 굶주리는 북한 인민에게 한국인들이 보이는 야비함을 보라.

어릴 적 대구에서의 '희한한 칭찬'을 아버지에게 꺼낸 건 서른 무렵이다. 아버지는 웃으며 당신의 '희한한 칭찬'을 들려주었다. 매우 정열적이었던 증조 할아버지는 만주를 거쳐 일본에 건너가 식솔들을 불러들였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았다. 동네사람들(일본인들)은 아버지 가족을 가리켜 말하곤 했다. "김상 네는 조센징 같지 않아." 해방되던 해 아버지 가족은 연락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해가 바뀌도록 급우들(한국인들)로부터 매를 맞아야 했다. 급우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하곤 했다. "죽어라, 쪽발이 새끼." | 씨네21 1999년_4월
1999/04/20 16:30 1999/04/20 16:30
1999/03/23 16:25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은 '왕권의 장자 세습'을 그린 영화다. 동물의 왕 무파사에게 아들 심바가 태어난다. 무파사의 동생 스카는 2인자의 자리를 잃게 된 제 처지에 불만을 품고 하이에나들과 작당한다. 스카의 계략으로 심바는 달리는 들소떼에 갇히고 무파사는 심바를 구해내지만 지친 자신은 죽고 만다. 심바는 아버지를 죽게 한 자책감에 왕국을 떠나고 스카는 왕위에 오른다. 정처 없이 헤매다 쓰러진 심바는 멧돼지 품바와 시몬(얘는 무슨 동물인지 모르겠다)에게 길러진다. 어른이 된 심바는 여전히 자책감에 시달리지만 어느 날 밤 아버지의 환영을 보고 왕국으로 돌아간다. 아버지의 죽음이 삼촌의 계략이었음을 안 심바는 삼촌과 대결하고 왕국을 되찾는다. 심바는 삼촌을 죽이지 않고 내쫓는다. 무파사의 아들 심바는 다시 왕이 된다. <라이온 킹>은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인간의 왕국을 그리고 있지만, 왕과 백성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체제는 오히려 동물들에게 더 어울려 보인다. 인간의 세계는 만민평등을 기초로 한 시민의 세계를 이룬지 이미 한 세기를 넘기고 있지 않는가.

1999년, 한국의 '현대'라는 재벌에서 일어난 해프닝은 그곳이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여전히 동물의 왕국임을 보여준다. 현대 왕국의 스카는 왕권을 물려받게 된 현대의 심바에게 도전하지만 현대의 무파사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왕권은 현대의 심바에게 세습된다. 현대의 무파사는 현대의 스카에게 "생각보다 알짜배기인 회사"를 주고 현대의 스카는 "큰 회사를 주신 형님께 감사"의 말을 남긴 채 왕국을 떠난다. 현대의 무파사는 한 방울의 피도 보지 않고 모든 상황을 말끔히 해결함으로써 현대라는 동물의 왕국이 <라이온 킹>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보다 훨씬 더 짜임새 있는 동물의 왕국임을 증명해 보였다.
희한한 것은 온 나라의 매스컴을 통해 생중계 된 그 일에 보인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응이었다. 이른바 경제개발 기간 동안 자신들의 뼈를 녹여 부어 이룬 기업을 정씨 성을 가진 한 일가족이 제 집 안방에 놓인 돈궤 나누듯 굴리고 쪼개는 그 기막힌 상황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들이 보인 분노란, 운전면허를 부정으로 따고도 거짓말을 한 어느 여자 탤런트에게 보낸 그것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일에 보인 반응은 오히려 포르노에 찍히고 잠적해버린 또 다른 여자 탤런트에 보인 반응과 비슷했는데, 약간의 개탄에다 나도 한번 봤으면 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재벌 왕국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일이었다.

재벌의 힘, 그들이 경제난의 주범이라는 의견이 온 나라에 보편화된 오늘에도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건재할 수 있는 그 무한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바로 국민들로부터, 고스톱을 치다가도 아홉 시 뉴스를 보다가도 재벌 얘기만 나오면 사악하다 욕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들이나 조카가 재벌의 머슴이 되는 일은 집안의 자랑으로 여기는 국민들로부터 온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재벌들에 보이는 적개심이란 실은 한 뼘이라도 재벌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의 비굴한 표현일 뿐일지도 모른다. 온 나라에 재벌에 대한 원성이 차고 넘쳐도 정작 재벌들은 한치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 그 원성이란 재벌들이 실제로 부딪히는 대한민국 국민들 속에선 도무지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원성이 가상의 것이 아니라면 이른바 경제 개혁은 일주일이면 족할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권좌의 뒷켠으로 물러선 후, 대한민국은 단지 몇 개의 재벌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들의 백성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동물의 왕국인가. | 씨네21 1999년_3월
1999/03/23 16:25 1999/03/23 16:25
1999/03/09 16:26
알고 보면 이번 스크린쿼터 파동이란 골 때리는 일이었다. 스크린쿼터는 GATT는 물론 그 후신인 WTO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문화적 예외 조항'으로 볼 때, 현재로선 어떤 '경제 논리'로도 축소나 폐지를 거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제가 안 되는 일이 문제가 된 셈이다. 내막은 문화 의식이 결여된 한국 공무원들이 '공정 무역'이라는 채찍과 '5억 달러 투자'(외자 유치!)라는 당근으로 꼬드기는 미국 공무원들에게 은근슬쩍 땅문서(스크린쿼터라는) 내주려다 소란이 난, '실화'보다는 '야담'에 가까운, 그런 일이었다.

영화인들은 전례 없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싸웠냐 하면 '자신들의 모습에 자신들이 놀랄 정도'라고 했다. 두 달이 넘게 계속된 영화인들의 싸움은 공무원들이 꼬리를 빼고 국회 결의안이 관철되고서야 일차 마무리되었다. 농성을 풀며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영화인들이 제아무리 열심히 싸웠던들 국민들이 외면했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왜 이리도 민망한가.

과연 한국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인가. 제 밥그릇이 걸린 일에는 '자신들이 놀랄 정도'로 열심인 영화인들은 남의 밥그릇에는 어떤 관심을 보였던가. 자신들의 불행을 언제나 민족이라는 이름에 호소하는 영화인들은 정작 민족이 불행할 때 어디에 있었던가. 이번 싸움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독점 자본'으로 해석하는 참신함을 보인 영화인들은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이 진짜 독점자본과 싸울 때 무엇을 도왔던가. 이번 싸움에서 한국 영화를 '민족 고유의 것'으로 해석하던 영화인들은 농민들이 신토불이를 외치며 미국쌀과 싸울 때 어떤 지지를 보냈던가. 이 나라의 유한 계급을 뺀 모든 백성들이 불행해진 구제금융 시대가 일년을 넘기고 있지만 그 동안 영화인들은 그 잘난 영화 예술로 세상의 어떤 모습을 그려냈던가. '경쟁력'을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길거리를 헤매는 이 나라의 백성들이 그런 염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경쟁력'을 유보하는 아량을 베풀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한번도 사회적이지 않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사회적 혜택은 과연 공정한가.

이번 싸움을 통해 개발된 영화인들의 자기 논리가 전례 없이 정교함에도, 이번 싸움의 열기가 밥그릇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체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냉소하고 일상의 우연에 천착한다는 지성파 감독까지 연단에 오르는 이변이 생길 리 있었겠는가.('정치 의식'을 초월한 듯 행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경제 의식' 아래에 머물 뿐이다.) 나는 영화인들의 '경제 투쟁'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경제투쟁이 경제투쟁에 머물지 않기를,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열정이 남의 밥그릇도 함께 생각하는 사회적 지평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영화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억울함과 고통을 이 나라의 백성들이 겪는 보편적인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 재발견하여야 한다. 영화인들은 이번 싸움을 통해 지켜낸 스크린쿼터가 오로지 영화라는 업종에만 주어지는 소중한 혜택임을, 그들의 장사가 매우 특별한 장사임을 다시금 생각하여야 한다. 그것은 산업의 문제이자 예술의 문제지만, 오히려 '염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족 : 이 만큼 말하고도, 내 속은 여전히 찜찜하다. 한국 영화인들이 농성장에서 함께 흘린 눈물은 모두 같은가. 영화 자본가의 눈물과 영화 노동자의 눈물은 싸움이 끝난 다음에도 연대하는가. 싸움의 성과로 얻어지는 산업적 이익은 함께 흘린 눈물처럼 공정하게 분배되는가. 한국영화인들은 같은 민족인 동시에 같은 계급인가. 한국 영화인들에게는 '상식선'의 정치의식이 필요하다. | 씨네21 1999년_3월
1999/03/09 16:26 1999/03/09 16:26
1999/02/23 16:23
김건. 이름보다는 곰탱이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는 세살 짜리 내 아들이다. 나는 애당초 아들을 갖기를 바라지 않았다. 세상에 한 명의 가해자를 추가하느니 차라리 한 명의 피해자를 낳아 강하게 키우는 편이 낫다는 소박한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첫째(몇 달 전 이 칼럼에 등장한 바 있는 김단)는 딸이었고 더는 아이를 두지 않으려 했다. 장가를 들고 아내와 딸까지 건사하며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이 번쩍 떠지던 나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곡절이란 늘 생각대로가 아니어서 한 아이를 더 갖게 되었고 나는 결국 아들을 키우게 되었다.

4.5킬로그램. 장대한 몸을 갖고 나온 김건을 보고 사람들은 "사내답게 생겼다" 말했고, 김건이 걷게 되고 생김새에 걸맞은 기질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주저 없이 "사내답다" 말하기 시작했다. 사나이. 어정쩡한 건달로 살아온 나를 그 부록인 '의리'와 함께 언제나 마법처럼 지배해온 그 말이 내 아들에게 사용되었을 때 나는 흐뭇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과연 사내답다는 건 무엇인가. 사나이의 실체란 무엇이며 그게 있기나 한 걸까. 잊고 있던, 아들을 갖기를 바라지 않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의구심은 커져갔다. 김건이 가진 사내다움, 제 누나하고는 확연히 다른, 다른 남자아이들과 비교해서도 두드러진, 아비 눈에 흐뭇하게만 비치는, 씩씩함 같기도 하고 난폭함 같기도 한 그 기질은 과연 좋기만 한 걸까. 김건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타고난 사내다움은 제 여자에게 제 자식이나 부하나 후배들에게 제가 속한 사회망에 그리고 무엇보다 제 세계관에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

이른바 '이념적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나이'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삶의 진보성. 공허한 거대담론(이른바 '빛나는 시절', 수재형 좌파들의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던)이 아닌 일상과 생활의 진보성을 체득하는 일.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성적 차별의 문제였다. 세상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들이 단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감수해야 하는 갖은 불공정함을 놓아 둔 채 어떤 진보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성적 차별은 '사나이'로부터 나온다.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사내다운 사나이가 존재'하기 위해선 언제나 '여자다운 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나이'라는 말은 온갖 범죄, 온갖 악행, 온갖 불평등, 온갖 권위주의, 온갖 파시즘의 면죄부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더러운 세상은 그저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사나이들이 뒤섞여 저마다의 사내다움을 과시하고 경합하는 과정의 부산물인 것이다.

나는 김건을 부드러운 남자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사내다움의 결정체로 계획된 듯한 김건의 어떤 부분을 제어하고 어떤 방향으로 조정해야 할 것인가. 박학기는 내시 같고 김현식은 사내답다고 느끼는 정서를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다만 김건은 그 모든 노력을 아비보다 좀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아비보다는 좀더 나가기를 바란다. 나는 김건이 세상에 유익을 주진 못할 망정 아비를 포함한 다른 모든 남자들처럼 세상을 가해하는 사나이가 되지 않길 바란다.

김건이 깁스를 풀었다. 김건은 1월 1일 '사내답게' 놀다가 다리가 부러졌었다. 집에 돌아와 욕조에 더운물을 받고 넣어주니 연신 첨벙대며 좋아한다. 한달 만의 목욕인 것이다. 깁스를 했던 자리에 낀 더께를 벗겨주다 옷이 젖어 나도 욕조에 들어갔다. 비스듬히 앉아 김건을 다리 위에 앉혀 놓고 그 씨름꾼 같은 몸과 능글맞은 얼굴을 들여다보자니 웃음이 나온다. 어쩌다 이런 놈이 나왔을까. 이 순간만은 '사나이'의 사회적 역기능 따위는 접어 두자. 뿌연 수증기 속에, 발개진 얼굴을 맞대고 웃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을 뿐이다. | 씨네21 1999년_2월
1999/02/23 16:23 1999/02/23 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