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3 07:59
①평소 노동을 비롯한 온갖 사회 문제에 각별한 관심과 진보적 태도를 피력하다가 ②선거 때면 ‘극우 척결 우선’ ‘한국적 정치 상황’ ‘사회 변화의 점진성’ 등의 논리로 리버럴 정당의 집권에 온 힘을 다 쏟고는 ③리버럴 정권이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여론이 악화될라치면 개혁의지가 변질되었네, 초심을 잃었네 비난하며 ①로 돌아간다.
이 행태를 20년째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리버럴 집권에 집착하는 이유는 예의 ‘치우침 없는’ 정치적 소신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치적 소신을 만들어내는 건 자취방을 전전하며 경찰에 쫓기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은행 잔고와 부동산과 사회 문화 자본을 안정화하면서도 '진보 행세' 하려는 욕구다. 단지 그 욕구 때문에 그들은 대중과 급진 정치의 차단막이 됨으로써 이 사악한 자본의 제국의 수호에 기여한다. 또 한명의 젊은 하청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그들이 유체이탈적 개탄은 멈추고 그 사실을 되새기길 바란다. 20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2018/12/13 07:59 2018/12/13 07:59
2018/12/0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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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4 16:08 2018/12/04 16:08
2018/12/03 11:10
인문학은 지식이 아니라 질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고 그와 관련한 끊임없는 질문이다. 우리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인문학적 지식은 그 질문들의 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습득이 나를 인문주의자로 살게 해주는 건 아니다. 남의 질문으로 내 질문을 대체할 순 없다. 인문학은 ‘고독한 질문’이며, 인문학적 지식은 다만 그 질문에 기여한다.
2018/12/03 11:10 2018/12/03 11:10
2018/11/29 20:49
맑스의 말마따나 사회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게 아니라, 개인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들의 합으로 구성된다. 모든 관계에서 나쁜 개인도 모든 관계에서 좋은 개인도 없다. 나에게 나쁜 인간이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 수 있고 나에게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나쁜 인간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의 인격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판단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는 나쁜 인간이다’보다 ‘그는 나쁜 행동을 했다’가 우리를 좀 더 현명하게 한다.
2018/11/29 20:49 2018/11/29 20:49
2018/11/24 23:07
2001년 엔론의 회계 부정 사건으로 회장은 24년형을 받고 심장마비로 사망, 부회장은 자살, CEO는 도주했다 1년 만에 체포되어 역시 24년형, 회계법인은 해체되었다. 미국이 보인 엄격한 경제 정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우파적 정의이다.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가신 이후에도 좌파 정치가 살아나지 못한 주요한 비결도 우파적 경제정의가 굳건했기 때문이다. 이걸 ‘정의 1’이라고 하자. 그리고 이런 경제 정의마저 부인하는 사이비 자유시장주의자 쓰레기들을 ‘정의 0’이라 하자.

패션지 <보그> 미국판의 10대지인 <틴보그>는 올해 ‘맑스에 관한 모든 것’과 ‘자본주의에 관한 모든 것’이라는 기사를 연이어 실었다. 물론 <틴보그>는 10대에게 사회주의를 주입하려는 게 아니라 10대 독자에게서 부는 사회주의 바람에 상업적 부응을 하는 것이다. 근래 미국의 청년과 청소년을 중심으로 부는 사회주의 바람은 ‘정의 1’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흐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정의롭지 않다는 전제 하에 시스템을 넘어선 새로운 정의를 요구한다. 이것은 ‘정의 2’라고 하자.

삼성바이오닉스의 설립과 엔론보다 훨씬 큰 규모의 회계 부정이 지난 20여년에 걸친 이재용의 삼성 승계 작업임을 모르는 사람은 이젠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재용의 처벌은커녕 삼바의 상장 폐지조차도 논란 중이라는 사실은 한국의 경제 정의가 ‘정의 0’을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미국 젊은 세대에서 ‘정의 2’의 흐름은 미국 사회 전반에서 ‘정의 0’의 쇠락과 ‘정의 1’의 일반화를 의미한다. 한국 청년과 청소년은 ‘헬조선’을 외치지만 자본주의 극복이나 사회주의 모색보다 아직은 서로를 혐오하고 조롱하는 일에 매몰되는 듯하다.

그들이 시스템을 저주하면서도 시스템의 바닥을 맴도는 데는 386리버럴(자본주의 지배계급이 된 옛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반감과 학습 효과 등 몇가지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사정이나 상황도 결국 ‘현실 자체’를 완전히 은폐할 순 없다는 건 역사의 법칙이다. 미국에서 바람도 2008년 월가발 공황과 점령 시위, 대선에서 샌더스의 약진 등 10여 년의 경과였다. 누구도 그 10년을 예상하지 못했다. 반전은 멀지 않은 셈이다. 기여할 구석이 있는 사람은 준비해야 한다.
2018/11/24 23:07 2018/11/24 2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