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2 09:14
마르크스가 특별한 인물이긴 하나 그 위대함에 빠지는 건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건 마르크스라는 한 인간이 아니라 그가 남긴 사유와 이론적 성과이고 그걸 지금 현실에서 현명하게 사용하는 일이다. 이런 태도는 이제 어지간한 사회에선 지식인의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유독 한국의 진보 진영엔 이런 상식적 태도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내가 마르크스주의 해봐서 아는데 마르크스는 폐기되어야 해’라고 말한다. 굳이 그 말을 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한다. 리버럴 천지인 한국의 지식 사회와 제도 미디어, 혹은 기금이나 지원금을 쥔 관료들에게서 그 말은 꽤 호감을 얻는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그들은 다만 한때 멋모르고 스탈린주의에 경도된 적이 있을 뿐이다. 동구 패망으로 그들이 받은 상처와 자괴감을 이해한다. 요컨대 그들의 마르크스 알레르기는 제 상처와 자괴감을 떨쳐내려는 뒤틀린 노력이다. 그러나 중년에 이르고도 여전히 그렇다면, 토론보다는 전문가의 치료를 고려하는 게 좋겠다. 병행하여 권하고 싶은 건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 일이다. 실은 한번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이건 내가 해봐서 안다.
2019/05/02 09:14 2019/05/02 09:14
2019/04/29 09:33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정치는 당연히 존재하는 ‘기본값’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근대성의 요체는 자본주의를 반대/견제하는 좌파 정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유럽이든 북유럽이든 좀 낫다는 사회들의 공통점이며, 그 사회들이 ‘좀 나은’ 비결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치적 근대화는 ‘민주화’로 대변되는데 민주화는 곧  ‘독재 타도’였다. 문제는 독재가 해소되고도 정치적 근대성은 독재 타도(‘수구 청산’으로 이름 바뀌어)로 축소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갈수록 정치적 근대성은 퇴행해왔다.(참고로, 민노당의 2004년 의석수는 10명이다.) 독재가 해소된 지 30년이 더 지났지만 한국의 진보 시민들의 가장 큰 정치적 관심은 변함없이 독재 타도이다. 정치는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일이다. 지금 한국에서 현재와 미래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주제는 뭘까. ‘자유주의 정치와 수구 정치의 연합으로서 자본 독재’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치는 ‘과거의 무한 복기’를 의미한다. 정치권과 정치인의 기만과 후진성을 탓하는 건 터무니없다. 이 모든 상황은 전적으로 시민 스스로의 선택이며, 정치권과 정치인은 그 선택을 충직하게 반영할 뿐이다. 노동이나 교육, 집 등 시민들이 제 삶에서 토로하는 거의 모든 사회적 고통이 자본 독재에 기인하는데도 시민들이 자본 독재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기이한 일이긴 하다.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한국은 “마술에 걸려 왜곡되고 뒤집힌 사회이며, 자본 선생(Monsieur le Capital)과 토지 여사(Madame la Terre)가 사회적인 인물이자 단순한 사물로서 괴상한 춤을 추고 있는 사회”인 셈이다. 그러나 ‘마술에 걸려 왜곡되고 뒤집힌 사회’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엄연히 ‘이성과 합리성이 작동하는 온전한 세계’이다.
2019/04/29 09:33 2019/04/29 09:33
2019/04/27 16:30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를 못 먹겠는 걸 보면 전보다는 제법 커피 맛을 알게 된듯하다. 카페에선 대개 라테를 사 먹는다. 연희, 동교, 합정 등에 자주 가는 몇 개의 카페가 있다. 작업실에서는 언제나 에스프레소다. 코만단테 그라인더(전동 그라인더와 맛의 차이를 확연히 구분할 줄 안다기보다는 이 기계가 마음에 들어 쓴다)로 콩을 갈아 모카포트 브리카로 추출한다. 콩은 이코복스 가로수길점에서 사는데 떨어져 갈 무렵 강남 갈 일이 있을 때 들르거나 친구에게 부탁했다. 얼마 전 우주소년과 전광수커피가 세계문학 커피를 내놨다고 해서 이걸 한번 사 먹어봐야겠다 싶던 참에, 우주소년 박우현 선생이 보내주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커피. 마초 작가는 영 취향이 아니지만(난 스스로 병들어 세계의 병듦을 드러내는 작가가 좋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처럼) 커피는 꽤 마음에 든다. 짙고 깊으며, 시지 않다.
2019/04/27 16:30 2019/04/27 16:30
2019/04/26 10:51
정태춘・박은옥 40주년 공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많은 사람이 가수 정태춘・박은옥을 굳이 ‘예술가’라 부르는 건 그들 노래에 담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사유 때문일 겁니다. 사유는 개인의 내면적 성찰에서 출발하여 민족이나 계급과 같은 사회적 지평으로 확장되며 깊이를 더해갔습니다. 그 어느 지점에선가 우리는 동행하길 멈칫거렸고, 그들은 노래를 멈추었습니다.

예술가는 가장 전위적인 존재입니다. 예술가는 ‘제한 없는 상상력’(정태춘의 표현으로 ‘무책임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그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관객이나 청중과의 동행으로 구현됩니다. 바로 그래서, 때로는 ‘예술의 중단’이 예술가가 전위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40주년 공연’은 정태춘・박은옥과 우리가 오랜만에 주고받는 편지와 같습니다. 중년의 관객은 이 공연이 빛나는 젊은 시절을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일 겁니다. 또한 우리는  근래 제 나라를 스스럼없이 ‘헬조선’이라 말하는 젊은 시민들이 정태춘・박은옥의 노래에 깊은 인상을 받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단지 ‘좋은 옛 노래’를 발견한 게 아닙니다. 노래의 전위성은 ‘현재성’으로 살아납니다.

특별한 예술가들이 대개 그렇듯 정태춘은 제 안에서 이야기가 샘솟는 이입니다. ‘40주년 프로젝트’가 잘 치러진 후 노래 만들기를 멈춘 그로 돌아간다 해도, 인간과 사회 현실에 반응하는 이야기는 식지 않을 것입니다.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바로 우리를 통해 노래는 지속됩니다.

정태춘・박은옥 4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 위원장 김규항


(정태춘・박은옥 40주년 공연 팸플릿 인사말)
2019/04/26 10:51 2019/04/26 10:51
2019/04/22 08:37
임금이 높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가 자신이 ‘임금 노예’라 생각하긴 어렵다. 아예 노동자라는 생각도 안 할 가능성이 높다. 로마인들은 노예에 대한 가장 직관적 정의를 남겼다. ‘제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자.’  인간이 제 운명을 만들어가는 방법은 노동이며, 자유인인가 노예인가는 노동의 자율성과 타율성에 있다. 고대 노예라고 모두 채찍을 맞아가며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건 아니다. 시를 낭송하고 연극을 하고 건축을 하는 예술가 노예도 있었고, 로마의 교사 노예에겐 자유인 학생에 대한 일정한 체벌까지 허용되었다. ‘고급 노예’는 교육 수준이 높았고 가난한 자유인보다 안락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의 의지와 명령에 따라 타율적 노동을 수행하는 노예였다. 다만 여느 노예와 삶의 외형적 격차 때문에 자신이 노예임을  자각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오늘의 고급 노예들이 그렇듯 말이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두가지 소망을 갖는다. 고급 노예가 되는 것, 친절한 주인을 만나는 것. 전자는 오늘 부모들의 소망이자 교육의 목표다. 후자는 어떤가? 오스카 와일드는 ‘친절한 노예주는 최악의 노예주’라 갈파한 바 있다. 노예로 하여금 노예임을 자각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 해방’은 많은 경우 ‘노예의 두가지 소망’으로 오해되곤 한다. ‘노동 해방’은 노예가 자유인이 되는 일이다. 물론 그 일은 자신이 노예임을 자각하는 노예로부터 시작된다.
2019/04/22 08:37 2019/04/22 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