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29 17:20
물론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를 무작정 반대하는 게 아니고,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엔 여러 쉽지 않은 문제와 상황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그럴수록 오히려 이 문제를 사회 전체로 지평을 넓혀서, 그리고 역사적 맥락을 살펴서 생각하길 권한다. 사람이란 제 이해관계와 무관한 일엔 명쾌해도, 작게라도 제 이해관계가 걸린 일엔 만가지 사정이 있기 마련 아닌가.

예컨대 학교의 기간제 교사 문제와 대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는 물론 사정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비정규직의 보편성은 엄연히 존재한다.  비정규직은 ‘자본/국가의 노동에 대한 분리지배 전략’이라 요약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직된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며 정치투쟁적 성격을 순치하면서, 총 노동비용은 오히려 줄이거나 고정하는 전략이다. 물론 정규직 노조의 묵인이나 수용 없이는 불가능한 전략이다.

20여년 가량 진행되어 고착되다보니 마치 원래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존재한  듯한 착시를 갖게 된다. 염연히 시작과 출발이 있었다. 자본 입장에서 고용은 당연히 정규직으로 하는 거라는 생각이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었다. 정규직 노동자 입장에선 같은 일을 하는데 임금은 절반인 동료 노동자를 묵인하거나 수용하는 순간이 있었다. 누구도 모르게 벌어진 일도, 하루 아침에 벌어진 일도 아니다.
2017/08/29 17:20 2017/08/29 17:20
2017/08/29 17:19
현 정부 청와대 고위직 평균 재산은 19.8억이고 박근혜 정권 시작할 때는 18.2억이었다. 이른바 ’86’으로 대변되는 민주화운동 출신의 신흥 기득권 세력이 극우독재를 기반으로 하는 구 기득권 세력과 사회 문화 자본의 측면뿐 아니라 경제 자본 면에서도 이미 대등한 수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도덕적 비평은 적절치 않다. 그들이 제도 사회에 진입한 지 30여년이고, 서구의 68세대가 그렇듯 변혁적 청년 세대의 일부가 시간이 흘러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되는 건 역사의 수순이다. 다만 그들의 정치(그들에게 필요한 정치)와 내게 필요한 정치가 얼마나 같은가를  되새겨 보는 건 필요한 일이다. 오늘 한국의 계급/계층 구조를 볼 때  상위 10%, 즉 번듯한 수준의 정규직에 해당한다면 그들의 정치는 내게 필요한 정치에 대부분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정치에 희망을 갖는 건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아래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세월호에서 숨진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은 우파 정권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본질은 기간제 교사 제도 자체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기간제 교사가 제외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전교조가 기간제 정규직화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낸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비정규직이 없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촛불을 들었던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참교육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길고 장황한 문장들 복판에 스치듯 박힌 “기간제 교원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명서는 마치 인포그라픽처럼 오늘 한국 사회를 한눈에 보여준다. 전교조뿐 아니라 비정규직을 공개적으로 배제하는 '민주적' 노동운동의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이 아니라 오래 전 변화하여 이미 고착된 현실이 더는 숨겨지기 어려워 드러나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배치되어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박근혜 반대’의 기치로 하나가 되어 있는 상황은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2017/08/29 17:19 2017/08/29 17:19
2017/08/23 14:05
성숙한 정치일수록 정치인이 부각되지 않는다.(미국/한국, 서유럽, 북유럽의 정치인 이름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인물로서 정치인이 부각된다는 건 정치가 저급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영웅적 정치인은 그 자체로 전근대적 의식의 반영이며 스타 정치인 역시 신화라는 전근대적 의식의 산물이다. 오바마든 문재인이든 박근혜든 마찬가지다. 정치인에 대한 열광과 환호 속에 체제는 대중의 의식을 손쉽게 조종하고 지배한다. 성숙한 시민은 특정 정치인에게 열광하거나 환호하지 않는다, 적어도 자제한다. 그저 ‘쓸 만하다’고 여기거나 격을 잃지 않는 지지와 격려를 보낼 뿐이다. 체제는 그런 시민을 함부로 다룰 수 없고 자연스럽게 시민은 좀더 정치의 주인이 된다. ‘주권자’란 그런 시민을 이르는 말이다.
2017/08/23 14:05 2017/08/23 14:05
2017/08/21 15:36
인간은 해방의 욕구와 복종의 욕구를 동시에 갖는다. 인간은 지배당하는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요청에 따라 지배로 걸어 들어간다. 지배에서 해방을 요구한다는 건 좀더 나은 지배(옛 지배의 회복을 포함한)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해방의 욕구는 언제나 복종의 욕구로 견제되며 타협점을 찾는다. 혁명이란 그 해방 쪽으로 기운 타협점이자 지배의 재구성이다.
2017/08/21 15:36 2017/08/21 15:36
2017/08/17 20:36
인간의 행동은 생각보다 '체계'에 의한 경우가 많고 우리는 그 사실에 익숙지 않아 좀더 고단한 경향이 있다. 예컨대 아랫사람에게 권위적인 사람이 윗사람에겐 굽신거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이중적이고 위선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권위주의 체계'에 의해 일관되게 행동하고 있다. 권위주의 체계에서 권위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아랫사람에게 권위적인 사람은 윗사람의 권위적 태도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2017/08/17 20:36 2017/08/17 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