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7 10:08
10대 시절부터 품은 의문은 왜 한국 지식인의 글엔 자의식이 없을까 였다. 다들 구름 위에라도 앉은 듯 자신은 쏙 빼놓고 인간과 사회를 비평하는 모습은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웠다. 여전히 중장년 남성 지식인의 글에서 흔한 관습이다. 근래 소셜미디어, 특히 페이스북에서 나는 반대의 의문을 갖게 된다. 자의식 과잉을 넘어,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객관성을 좇는 기본적인 과정마저 생략한 글이 지나치게 많다. 남들(페친은 친구가 아니다) 앞에서 매우 감상적인 어조로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으면, 팩트가 왜곡되고 누군가의 인격이 침해되는가와 아랑곳없이 값싼 위로와 용서가 줄줄이 달린다. 위로와 용서는 이전 혹은 이후 자신에 대한 위로와 용서와 교환된다. 우울증 아닌 사람을 찾기 어려운 가련한 사회이지만, 이런 뻔한 짓엔 가담하지 않는 게 좋겠다.
2019/07/07 10:08 2019/07/07 10:08
2019/06/10 09:56
책을 빨리/많이 읽는 건 결코 미덕이 아니었다. 지성사는 오히려 적은 책을 느리게 일생에 걸쳐 거듭 읽는 일과 깊은 관련을 맺어왔다. 물신 세계에서 지식은 사유의 재료가 아니라 각자의 좌판에 늘어놓는 정보로 전락하고, 책을 빨리/많이 읽는 건 매우 중요한 미덕이 된다.(“새로운 지식과 정보는 매일 쏟아지는데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가련한 헛소리) 사유를 원한다면 ‘난독의 미덕’을 기억할 것.
2019/06/10 09:56 2019/06/10 09:56
2019/06/08 16:24
김제동의 강연료와 출연료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데, 이른바 진보 시민들이 그를 옹호하는 모습에선 우스꽝스러운 자기 모순이 보인다. 우선 그들의 ‘적정 가격’ 운운하는 김제동 옹호는 철저한 시장 논리에 기반한다. 진보시민이라면 ‘노동력 상품’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그들은 시장 논리에 기반하여 김제동을 옹호하면서도 여전히 그를 사회운동하는 사람처럼 여긴다. 진보 시민이라면 시스템 안에서 상식 장사에 여념이 없는 부자 연예인보다 시스템을 거스르는 활동가에게 관심을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2019/06/08 16:24 2019/06/08 16:24
2019/06/01 10:11
상식적인 것은 늘 변화한다. 오늘 많은 사람에게 몰상식하고 야만적으로 취급되는  것들도 불과 얼마 전엔 당연한 상식이었다. 한국에서 반공주의나 성차별은 그 쉬운 예일 것이다.(또한 각자가 속한 사회 부문에서 그런 예가 있을 것이다.) 사회의 진전은 상식의 파괴와 변화로 나타난다. 물론 파괴와 변화가 모든 사회 성원에게 일제히 나타나진 않는다. 지식인과 예술가가 자연스럽게 선두에 서게 되고, 삶에서 더는 사유도 창조도 없는 사람들이 후미에 서게 된다. ‘상식적인 시민들’로부터 전자는 위험하고 비현실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후자는 구시대의 쓰레기로 여겨진다. 오늘 한국 사회의 비극은 진보적 지식인이나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상식의 맥락에서 위험하고 비현실적인 존재이길 거부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상식의 후미에 선 구시대의 쓰레기만 부각함으로써 상식적인 시민들로부터 상찬받고 현실에서 안정을 누리는 ‘상식 장사’에 여념이 없다. 지식인이나 예술가에게 ‘최소한의 상식’을 말하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일은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 모욕당하는 셈이다.
2019/06/01 10:11 2019/06/01 10:11
2019/05/20 17:22
후기 자본주의라는 완성된 물신 세계에서 인간의 삶은 한없이 작고 하찮아져 간다. 자괴감과 우울은 일상이 된다. 그에 관한 최근 한국에서 해결책 하나는 ‘스스로 더 작고 하찮아짐으로써 버티기’인 듯하다. 덕분에 출판업자들은 작고 하찮은 삶을 미화하는 책을 찍어내느라 여념이 없고, 티브이 예능은 만인의 유일하고 전능한 교양 교사로 군림한다. 스스로 더 작고 하찮아지는 사람들. 시스템은 콧노래를 부른다.
2019/05/20 17:22 2019/05/20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