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06 23:07
이른바 현실사회주의는 사회주의였는가. 사회주의의 본래 의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명료하게 답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인민의 정부는 인민들을 착취하고 공포에 떨게 했다. 그것은 자본과 국가의 공조라는 자본주의 체제를 더욱 단순화한 국가자본주의에 불과했다." 희한한 일은 그런 명료한 답변과 전혀 모순되는 주장이 그 명료한 답변과 늘 함께 한다는 것이다. 주장은 이렇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그 근거는 (사회주의가 아닌)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다."

이 아귀가 안 맞는 주장은 오늘 인간해방의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과 관련지으려는 모든 진지한 모색들에 적지 않은 몽환적 혼돈을 선사한다. 물론, 혼돈에 아무런 배경이 없는 건 아니다. 현실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었지만, 분명히 사회주의의 시도이긴 했다. 바꿔 말하면 20세기에 사회주의의 시도는 대거 '사회주의가 아닌 것'으로 귀결했다. 그 비극은 당연히 반공주의자들에게 최종적 자신감(사회주의는 좋은 것일 수 있지만 실현 불가능한 환상이라는)을 불어넣었다. 그 비극은 또한 강력한 반공주의의 장벽 덕에 현실 사회주의를 파악할 방법이 없었던, 현실 사회주의의 대외선전용 모델하우스에 안거하던 한국의 인탤리들을 제풀에 무너지게 했다.

비극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가. 비극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맑스는 물론 그 비극을 목도하진 못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의 첫 번째 시도가 일어나기 30여 년 전에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맑스의 삶의 족적에서조차 그런 비극의 편린을 무수히 엿볼 수 있다. 1872년 맑스는 자신이 지도적 위치에 있던 인터내셔널의 갈등을 보다 못해 결국 해산에 이르게 한다. 만일 내로라하는 국제 진보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진 그 갈등이 그 갈등의 외피처럼 단지 정당한 견해의 충돌이었다면, 토론과 논쟁을 통해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맑스는 그런 극단적인 해결책을 사용하진 않았을 것이다.

견해의 충돌을 외피로 하는 그 갈등의 내용 속에 '보편적인' 인간적 충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질투 욕심 음모 폭력 등 인간의 모든 악한 행동의 근원이자 어떤 숭고한 정신 속에도 능히 암약하는 인간의 본능적 이기심의 문제였다. 어이없는 얘기지만, 현실 사회주의가 '사회주의가 아닌 것'으로 귀결한 원인 또한 대개 거기에 있다. 이기심은 억압에 처한 상황보다는 억압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마련된 강력한 정부는 바로 그 강력함 덕분에 그 정부를 이루는 인간들(빛나는 혁명 이력을 가진, 역시 평범한 인간인)의 이기심을 고양시킨다. 강력한 혁명성과 폭발하는 이기심의 멀어지는 간격은 결국 비극을 낳는다.

이 숙명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민의 정부에 대한 인민들의 '견제 능력'이다. 우리는 스탈린이 죽었을 때 그 가련한 인민들이 위대한 아버지의 주검을 보기 위해 경쟁하다 수백 명이 깔려죽은 일을 알고 있다.(이 일을 두고 어느 한가한 논평가는 현실 사회주의가 '합의독재'였다 말한다. 차라리 합의할 능력이라도 있었더라면.) 견제 능력은커녕 내 주인은 나라는 최소한의 근대정신조차 갖지 못한 그 인민들은 '사회주의가 아닌 것'을 일찌감치 예비했다.

한국에서 근대 정신이 시작된 건 불과 몇년 새다. 한국인들은 극단적인 반공주의 말고도 세상을 보는 방법이 여럿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최초의 존중받을 만한 우익들(강준만을 필두로 한 양심적 자유주의자들)이 출현하면서 한국을 장악한 극우 정신의 추악한 가면이 벗겨지고 있다. 중립적으로 피력하자면, 사회주의의 시도에 가장 회의적인 듯한 한국에 사회주의의 시도를 위한 희망이 마련되는 중이다.(한겨레 2001.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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