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01 17:49
마리아라는 여자와의 스캔들을 다룬 책이 전지구적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지만, 예수는 여자들과 가까웠다. ‘여자를 밝혔다’는 말이 아니라 여자들과 대등하게 인격적으로 소통했다는 말이다. 예수의 최후를 끝까지 함께 한 이들도 여자 제자들이었다. 남자만을 사람으로 여기던 당시로선 예수의 행태는 매우 희한하게(‘저 양반이 대체 왜 저러지?’) 여겨졌다.

2천년 전 현실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인간의 역사에서 여자가 남자와 대등한 인간이 된 건 최근의 일이다. 물론 공식적으로 그렇고 사람들의 내면이나 습속에서는 여전히 많이 안 그렇다. 한국 사회를 보더라도 중년 이상 세대에선 여자는 남자(남편 혹은 자식)를 위해 존재하는 보조적 인간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대세를 이룬다.
물론 그런 생각은 매우 빠른 속도로 힘을 잃고 있다. 많은 여자들이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일이라 여겨지던 영역까지 파고들어 여자가 남자보다 생리적으로 열등하지 않음을 맹렬하게 증명해내는 중이다. 여자는 남자와 대등한 인간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고 그에 맞추어 많은 여자 아이들이 그렇게 키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여자의 삶을 옥죄는, 가부장제의 비장의 무기가 있다. 그건 바로 ‘엄마’다. 가부장제는 흔히 모성의 위대함과 그 무한한 희생을 찬미하면서 그것을 다시 여자의 의무로 들씌운다. 결국 여자들은 여자의 의무를 다 하면서 남자와 다름없이 일하는 슈퍼 인간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건 불가능하며 여자들은 불가능한 의무 덕에 모조리 죄인이 되고 만다.
아내도 그 이야기를 하더라만,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밥 안 하는 엄마, 외식으로 크는 아이들'이라는 프로그램이 많은 여자들의 반발을 산 모양이다. 일하는 엄마 덕에 늘 매식하는 아이들의 문제를 다룬 모양인데 안 그래도 제 새끼 사먹는 밥으로 때우게 하는 걸 아파하는 여자들의 속을 있는 대로 찢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이 설사 엄마들의 고충을 알아주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알아주고 보듬어주면 뭐 하는가 대안이 없는 걸. 문제의 본질은 한국 사회가 여자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없는 사회라는 데 있다. 경제 외형이 세계10위 어쩌고 하는 나라가 사회적 탁아 장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되어있지 않다.(흔히 북한을 우습게 여기지만 그곳은 적어도 여자가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사회다.) 결국 여자들은 죄없는 친정어머니의 여생을 징발하거나 일해서 버는 돈의 대부분을 아이 맡기는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밥 안하는 엄마’ 문제는 엄마라는 이름의 죄인과 관련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연들 가운데 작은 예일 뿐이다. 얼마 전 나는 한 소아정신과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가지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말하길 최근 정신의학계는 소아자폐증의 원인이 환경이 아니라 뇌의 병이라고 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내가 아는 한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른 병과는 달리 자폐증은 흔히 사람과의 따뜻한 소통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그 엄마를 죄인으로 만든다. 부모가 함께 지목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자연스럽게 엄마가 지목된다. 내가 아는 그 엄마도 씻지 못할 죄인이 되어 살아있되 살아있는 게 아닌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최근 정신의학계의 성과’를 근거로 자기를 변론한다면 사람들이 생각을 바꿀까? 천만에. 이번엔 그 변론을 엄마답지 못하다고 욕할 것이다.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다고? 엄마의 죄야말로 끝이 없어 보인다. (시사저널)
2006/06/01 17:49 2006/06/0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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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모성애

    Tracked from SUPASILLYGAL 2006/06/03 01:10  삭제

    부풀려진 모성애에 반대한다. 요즘 TV 광고들이나 여러가지 담론을 보고 있노라면 거의 발악적으로 모성을 종용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부장제의 마지막 몸부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