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03 12:42
060203.jpg


김단에게 다시 물었다. “만일 뭐든 키울 수 있다면 제일 좋은 건 뭐야?” “고양이.” “그 다음은?” “개.” “토끼는 고양이나 개를 키울 수 없으니까 대신 키우려했던 거지?” “응.” “그럼 아예 고양이를 목표로 해보지 그래?” “정말?” “기왕 키울 바엔 그렇게 하는 게 낫지 않겠어? 토끼를 키울 수 있다면 고양이도 키울 수 있을 거야. 건이하고 의논해봐.” 나는 김단이 전학오기 전에 제 용돈을 털어 학교 앞에 사는 도둑고양이 다섯 마리를 걷어먹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다음날 김건이 그랬다. “난 개가 더 좋지만 누나가 고양이를 너무 많이 좋아하니까 고양이 키워도 좋아.” 그렇게 ‘토끼 문제’는 ‘고양이 문제’로 전이했다. 남은 문제는 그의 어미와 아비가 가진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었다. 우리 세대에게 고양이는 ‘재수없는’ 동물이다. 그나마 나는 권윤주(스노우캣)와의 오랜 토론으로 어지간히 나아진 상태지만 아내는 그렇지 못했다. “집에 고양이하고 둘이 있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줄인 건 선태네 집에 들어온 개다. 선태 아내 승은은 짐승이라곤 붕어 새끼도 질색하는 사람인데 얼마 전 유기된 닥스훈트 한 마리를 집에 들였다. 키울 사람이 없으면 도살된다는 말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단다.(좋은 사람!) 그들은 건강상태가 안 좋은 개한테 ‘달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식구처럼 지내고 있다. 그 모습이 아내를 많이 누그러트린 모양이다. 설 연휴 직전 전원합의가 이루어지자 나는 석달 된 러시안블루 수컷을 얻어왔다. 아이들은 고양이 이름을 ‘얀’이라 붙였다.(나는 ‘얼’을 제안했는데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이름을 제안했을까?) 첫날, 얀은 집안을 탐색하느라 이리저리 구석만 찾아다니더니 다음날부턴 식구들에게 와서 몸을 비비고 장난도 치기 시작했다. 불러도 자기가 오고 싶을 때만 오는 태도는 내 마음에 쏙 든다. 훈련시키지 않았는데도 똥오줌을 잘 가리고, 밥도 먹을 만큼만 알아서 먹고, 개와는 다른 은근한 애교와 장난끼, 야생동물의 습성이 살아있는 행동거지, 볼수록 신비스러운 외모, 어느 것 하나 거슬리는 게 없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다니. 이럴 줄 누가 알았는가.
(김단 배 위에서 잠든 얀.)
2006/02/03 12:42 2006/02/03 12:42

트랙백 주소 :: http://gyuhang.net/trackback/709

  1. Subject: 고양이들이란...

    Tracked from 안티고네 이야기 2006/02/05 13:19  삭제

    “개는 부르면 바로 온다. 고양이는 메세지만 받고 나중에 오고싶을때 온다.” - 메리 블라이 “개는 사람을 따르고, 고양이는 집을 따른다.” - 한국속담 “개가 당신의 무릎에 뛰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