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1/07 22:09
며칠 전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를 김건이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뭐해요?" "설거지." "왜 남자가 설거지를 해요?" "남자는 설거지 하면 안 돼?"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건데." "설거지는 남자가 할 수도 있고 여자가 할 수 도 있는거야." "아닌데 여자가 하는 건데..."
김건의 볼을 감싸쥐며 "어휴, 이 마초 자식."하고 웃는데, 보고 있던 아내가 "아빠 닮아 그렇지."하며 또 웃는다. 아내가 나를 마초라 하는 건 그리 나쁜 뜻만은 아니라 믿지만(적어도 내 생각엔) 내가 내 또래의 한국남성 일반보다 좀더 마초 경향을 가진 건 부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특히 남자 후배들과의 관계에서 그런 경향이 지배적인데 녀석들과 대할 때 나는 보통때의 나보다 약간 불량해진다. 녀석들은 나를 "형님"이라 부르곤 한다.
반장난이긴 하지만 책상에 붙어 앉아 어줍잖은 글쪼가리로나 세상과 대화하는 나는 한편으로 그런 유치한 장난을 즐기는 게 틀림없다. 10대의 한 시절을 마초 정신(이른바 사나이 정신)을 숭상하며 보냈고 그 체험은 오늘 내 정신속에 거부할 수 없이 뿌리내려 있다. 여러 말이 필요하지 않은, 모든 복잡한 가치들이 한마디로 판가름하던, 이른바 의리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그 시절과 그 시절의 인간들을 나는 가슴아프게 추억하는 모양이다.
이른바 지식인 노릇을 하고 사는 현재에도 내 그런 경향은 발견되곤 하는 모양이다. 강준만 선생은 얼마 전 나를 다룬 글에서 "김규항은 좋은 말로 사나이다운 의리와 정이 있는데 바로 그 점이 냉철한 판단을 그르치기도 한다"는 지적을 했고, 딴지의 김어준은 어디서든 기회만 있으면 "규항이 형은 실은 마초이며 보통 마초들과 다른 점이라면 조금 섬세하다는 정도"라고 놀리곤 한다.
나는 그런 지적들을 흔쾌히 인정하고 내 정신 속에서 근절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문제는 내 그런 노력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할까. 머리속의 정리는 그럭저럭 되었지만 내 속 깊이 스며든 정서적 흔적들을 정리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마초' 이상을 달성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 설거지와 관련한 김건과의 대화는 좀더 이어진다.
"김건, 설거지를 남자가 하는 건 이상한 게 아냐." "그림책에도 설거지는 다 여자들만 하는데..." "김건, 어제 엄마가 피곤하셔서 김건이 장난감 다 치웠다며." (자랑스런 얼굴로)"히히." "그래, 엄마가 피곤한데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아빠가 안 하면 김건은 좋아?" (주먹을 흔들며)"내가 아빠 때려줄 거요." "어휴, 이 마초 자식."하며 나는 김건을 안고 볼을 비비고 김건은 자지러지며 아내와 김단(김건의 누나)은 두 마초를 바라보며 웃는다.

(여성신문)
2001/01/07 22:09 2001/01/0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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