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2/01 22:04
며칠 전 김건(네 살 먹은 내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한 여자 아이가 김건을 때리는데 이상하게도 잠자코 맞고만 있다가 울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아빠가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더라는 것이었다. 선생은 이어서 말하길 김건의 아빠가 왜 그렇게 말했는진 잘 알겠지만 사실 그 또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체구도 엇비슷하고 해서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김건이 그렇게 맞고 우는 게 보기 딱하더라고 부연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서 그 얘길 전해 들으며 처음엔 웃다가 나중엔 마음이 아파졌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유별나게 큰 체구를 가진, 제 엄마와 모자를 공유할 정도의 머리통을 한 아이가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된다는 제 아비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여자아이로부터 잠자코 맞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이 우스웠고 아비의 관념적인 가르침 덕에 아이가 치룬 고단함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다음날 아침 밥상에서 그 애기를 꺼냈다. “김건, 여자 친구가 때리면 어떡하지?” (고개를 숙이며)“그냥 맞아.” “왜?” “남자는 여자 때리면 안 돼.” “여자친구 중에 건이 만큼 힘센 친구도 있어?” “응.” “그런 친구는 같이 때려도 돼.” (고개를 들며)“여잔데?” “아빠가 여자친구 때리면 안 된다고 한 건 건이보다 약한 친구를 때리면 안 된다는 거거든. 건이 만큼 힘센 친구면 남자든 여자든 먼저 때리면 건이도 같이 때려도 돼.” “정말?” “하지만 친구를 때리는 건 나쁜 거지? 예쁜 말로 해야지?” (익살스런 얼굴로)“응.”

김건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그 마초적 외관에 놀랐고, 적어도 이 마초의 세상에 마초 한놈을 더 늘여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말하자면 나는 내 아들이 최소한 성차별적인 의식을 갖지 않는 건전한 남자로 성장하길 바랬던 것이다. (그런 의식은 확실히 어릴 때부터 길러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제 아내나 여성 동료에게 진보적이지 않은 저명한 진보주의자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그런 위선적인 진보주의자들은 대개 제 위선을 모르는데 그들이 진보를 학습하기 오래 전부터 그런 성차별적인 의식이 자연스레 학습해왔기 때문이다.)

그 일을 겪으며 나는 내가 아들을 성차별적이지 않은 의식을 가진 건전한 남자가 아니라 ‘좋은 마초’로 키우고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그 원인은 성차별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만 있을 뿐 정작 뭐가 성차별적인지에 대해선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 마초적 무지다.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는 내 말은 여전히 여자를 때리는 극악한 마초가 많은 세상에선 나름대로 유익하겠지만, 그 역시 얼마나 마초적인가. 여자를 때리는 놈이나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놈이나 여자를 열등한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 같은 마초일 뿐이다. 과연 내가 아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아비일까.

(여성신문)
2000/12/01 22:04 2000/12/0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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