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28 13:52
장일담은 백정 아비와 성매매여성 어미에게서 태어난 도둑놈이다. 그는 자기 처지에 비관하다가 어느 날 깨달은 바 있어 임꺽정처럼 의적이 된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도둑들에게 혁명을 가르친다. 탈옥한 장일담은 경찰에 쫓기게 되고 집창촌에 숨어드는데 그곳에서, 성병과 결핵과 정신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성매매여성이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것을 보고 “오, 나의 어머니여!” “발바닥이 하늘이다!” “하느님은 당신들의 썩은 자궁 속에 있다! 하느님은 밑바닥에 있다!”고 외친다. 일담은 ‘해동극락교’를 선포하고 ‘시천주’(侍天主) ‘양천주’(養天主) ‘생천주’(生天主) 세단계의 수행과 ‘공동소유’를 설교한다. 그는 인민들에게 전도를 하며 제사를 올려 모든 옛것을 불태우고, 폭력은 불가피하지만 ‘단’(斷)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그는 군중들과 함께 서울을 향해 깡통을 들고 진군한다. 그는 극락이란 “밥을 나눠 먹는 것”이며 “밥이 하늘이다”라고 선포한다. 하지만 일담은 패배하고 현상수배되어 쫓기다 배신자 유다스의 밀고로 잡혀 한마디 변명도 없이 반공법, 국가보안법, 내란죄의 죄목을 쓰고 목이 잘려 죽는다. 일담은 사흘 만에 부활하는데 잘린 목은 배신자의 몸통 위에 붙는다. 참수하는 순간 잘려진 일담의 머리가 배신자의 몸통 위에 붙는다. 일담은 영원히 억압받는 사람들의 구세주가 된다.


‘2천 년 전 예수가 어땠는가’를 알려고 노력하는 건, ‘지금 여기에서 예수가 어떨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다. 그런 노력을 통해서 예수는 2천년이라는 시간을 뚫고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현장에 부활한다. 2천 년 전 예수라는 팔레스타인 남성의 죽은 몸이 3일 만에 다시 살아났는가 아닌가는 본질이 아니다. 설사 그 ‘생물학적 기현상’을 증명해낸다 해도 그 삶이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현장에 살아있지 않다면, 그건 단지 ‘생물학적 기현상’일 뿐이다. 예수의 부활은 그가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예수의 부활을 가장 훼방하는 건 역설적이게도(혹은 당연하게도) 가독교의 중심 교리다. “1) 우리에겐 원죄가 있다. 2) 하느님이 그 원죄를 사해주려고 당신 아들 예수를 속죄양으로 삼았다. 3) 우리는 예수만 믿으면 구원 받는다.” 이 편의적이고 앙상한 3단계 구원론은 실은제도 교회의 존재와 운영을 위한 이데올로기다. 그 교리는 교회의 영원한 안녕을 위해 예수의 부활을 훼방한다.
늘 무시되는 사실이지만, 예수는 단 한번도 ‘원죄’ 따위는 얘기한 적이 없다. 그는 오로지 ‘회개’를 촉구했다. 예수가 말한 회개란 종교적 결신(교회에 나가고 계명을 지키는)이 아니라 ‘삶의 완전한 전복’을 뜻한다. 나밖에 모르던 사람이 남을 섬기며 살게 되며, 신분이나 세속적 조건으로 사람을 구분하던 사람이 모든 인간을 똑같은 형제자매로 여기게 된다. 그런 극적 변화가 회개이며 그로 인한 삶이 바로 구원이다. 그리고 그 구원을 통해 “양과 사자가 함께 뛰노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예수는 그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교회에 '안치'되어 있는 게 아니다. 하느님은 골방에도 시냇가에도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도 슬픔과 비탄이 있는 어디에도 있다. 회개와 구원은 골방에서도 시냇가에서도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도 슬픔과 비탄이 있는 어디에서도 가능하다. 하느님을 볼모로 잡고 회개와 구원의 독점권을 주장하는 제도 교회는 오히려 회개와 구원이 어려워 보이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러나 제3세계 현대 역사 속에는 감옥 창살에 이름 없는 풀꽃이 피어나듯 ‘교회를 넘어선 교회들’이 피어났다. 그 교회들은 '유약한 백인남성' 예수를 2천년 전 팔레스타인의 예수 그대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제 나라 인민들의 가장 수더분한 동무로 부활시킨다. 그 교회에서 예수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며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다. 제3세계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렇게 ‘우리 예수’를 형상화했다. 김지하의 장시구상 ‘장일담’은 그 가장 훌륭한 예 가운데 하나다. 비록 구상 단계에서 끝나긴 했지만(선생은 이제 그런 쪽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장일담’은 여전히 ‘예수의 한국적 형상화’에서 ‘남한 인민의 구세주상’에서 가장 높은 성취다. (다음에 계속)
2005/03/28 13:52 2005/03/2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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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부활, 그 후

    Tracked from Les Goliards 2005/03/29 08:35  삭제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것은 신학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문제중에 하나이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신학의 방향이 달라지며 그것에 대한 실천적 방안

  2. Subject:

    Tracked from Astrakan Cafe 2005/03/31 18:26  삭제

    '손님'리뷰를 기껏 썼다가...삐리리리리리리한 진보넷 서버가 날려버리는 바람에 다시 쓸 기운이 없음.. 안쓸거임... 뭐 이래...ㅡ_ㅡ 김규항님의 글이나 읽어보시길..아...허탈해....

  3. Subject: 예수.

    Tracked from 13th의 블로그 2005/04/03 19:05  삭제

    교회에 가지 않고도 예수에 대해 알고싶다면 추천한다.

  4. Subject: 꼭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아요? 왜 예수 믿는 사람만 구원을 받죠?

    Tracked from 정체성과 불멸에 관한 몹시 지루한 대화 2005/08/15 01:47  삭제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

  5. Subject: dbmecouc

    Tracked from dbmecouc 2008/04/05 15:19  삭제

    dbmecou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