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0 08:05
작년 4월 북한과 미국이 일촉즉발의 태도로 으르렁댈 무렵 바젤에 사는 후배가 물었다. ‘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서 곧 전쟁 난다고 부모님을 스위스로 모시라는데 정말 전쟁 날 것 같은가?’ 나는 ‘단정할 순 없지만 너무 걱정 안해도 될 거’라고 했다. 무엇보다 현재 한국 대기업들이 지분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상태이니 한국 내에서 전쟁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거였다. 후배는 수긍한 듯했다. 어느 시대나 대체로 그렇지만 특히 이윤이 절대 가치인, ‘인격화한 자본’이 다스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제 분쟁의 원인은 하나다. 지배계급의 이해관계. 지배계급은 그에 따라 분쟁도 하고 전쟁도 하며 또 분쟁과 전쟁을 멈추기도 한다. 그들의 선택은 ‘자유 수호’ ‘악의 축 제거’ ‘성전’ ‘국익’ ’평화 추구’ 따위로 동원 대상인 인민의 기호에 맞추어 포장된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극적으로 태도를 바꾼 건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신념이나 의식이 바뀌어서라기보다 피차 전쟁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핵심은 평화가 소수 지배계급의 이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현실 자체다. 북한이든 남한이든 미국이든 인민이 더 주인인 사회라면 애초부터 평화가 흔들릴 이유가 없다. 지배계급의 이해에 따라 우리가 불안해하거나 전쟁에 희생되는 상황도 부당하지만 그들의 이해에 따라 우리가 그들에게 감사하고 감동하는 것 역시 온당친 않다. 오히려 ‘이것들이 사람을 가지고 노는구나’ 부아가 치밀 일 아닌가. 그렇지 않다는 건 그런 현실이 우리의 동의에 의해 작동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의가 지속되는 한 평화는 영원히 보장되지 않는다.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의 허울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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