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0 22:49
조선일보가 '빈민'을 '인민'으로 잘못 알아듣고 문제 삼아서 말이 난 모양이다. 잘못 알아들은 걸 물고늘어지면 저들의 프레임에 걸려들게 된다. 인민이 어때서, 라고 받아쳐야 한다. 인민은 우리의 말인데, 우리의 말을 우리 스스로 찜찜해 하니 저들이 치고들어온다. 찜찜해 할 말은 '국민'이지 인민이 아니다. 아래는 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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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이라는 말을 상용하는데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다. 다들 ‘인민’(영어로 ‘피플’)을 상용한다. 국민이란 ‘국가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그 상용만으로 국가주의적인 정서가 내면화한다. 국가 안에서의 이해관계는 상충되는 경우가 많음에도(이를테면 정몽구의 이익과 현대자동차 비정규노동자의 이익은 전혀 상충된다) ‘국익’이니 ‘국가경제’니 따위 말도 안 되는 선동이 통하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이미 우리는 인민이라는 말을 얼마든 사용할 수 있다. 마음에 새겨진 극우독재가 우리를 막아설 뿐이다. ‘괜찮을까?’

그리고 ‘동무’. 지금 우리는 친구라는 말을 상용하지만 옛날엔 대개 동무였다. 동무는 친구보다 훨씬 정겨운 말이고 어깨동무라는 말이 있듯 아이들에겐 동무가 친구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말이다. <고래가그랬어>는 2003년 창간 때 이 문제를 놓고 숙고를 거듭했다. 결국 <고래가그랬어>의 주인은 아이들이니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당하게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독자들은 예상보다 쉽게 익숙해졌다. 이따금 새로운 독자부모들이 조심스레 문의해오면 ‘괜찮습니다’하며 같이 웃는 게 전부다.

‘인민’ ‘동무’는 제정신을 가진 모든 사회에서 상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들을 빼앗겼고 되찾기 위해 반세기의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치렀다. 그렇게 되찾은 소중한 우리의 말을 우리는 여전히 남의 말인 양 꺼린다. ‘인민’ ‘동무’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 벽이나 책상 위의 달력에 5월 1일이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라. 떡 하니 ‘근로자의 날’이라 적혀 있다. 근로자는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노동자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려고 강요된 말이다.

마음의 독재를 몰아내자. 우리의 말을 우리의 말로 만들자. ‘나라의 주인은 부자와 권력자가 아니라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인민입니다’ ‘아이들이 공부에 짓눌리지 않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노는 세상을 만듭시다’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어색한가? 우리의 말을 우리가 사용하는 게? 그러니 상용하고 또 상용하자. (2011)
2015/11/20 22:49 2015/11/2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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