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16 23:58
안철수를 새로운 정치의 희망이라 기대하고 환호하던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 얼굴만 보여도 욕을 한다. 이제 그들에게 안철수는 새로운 정치의 희망이 아니라 낡은 정치의 화신이 되어버린 듯하다. 물론 기대는 실망으로 바뀔 수 있고 그 낙차에 따라 욕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이력이 전무한 안철수가 정치판에서 힘을 갖게 되고 저리 활개칠 수 있었던 건 그들의 기대와 환호 덕 아니었던가. ‘나의 관련성’을 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다. 심각한 정치적 성찰까진 아니어도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내가 어리석었다’ 정도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단지 ‘성찰하지 않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의 태도는 매우 열정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듯한 그들이 실은 ‘정치로부터 유폐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들의 태도는 전통적인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수십년 전 복덕방에 모여 앉아 “대중이가 말이야” “영삼이가 말이야” “박통이 말이야” 하며 ‘한국 정치를 운영하던’ 영감들을 빼닮았다. 권위주의 사회의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권력들에 섬세하게 조아리며 식구들에나 군림하던 그들은 복덕방 장기판에 둘러앉아 세상의 모든 걸 꿰는 양 한국 정치의 막후 실력자라도 되는 양 허세를 부리곤 했다. 우스꽝스럽고 슬픈 풍경은 여전하다. 복덕방이 인터넷 공간으로, 장기판이 모니터와 키보드 혹은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유폐의 또 다른 사례일 것이다. 노무현은 기대와 환호로 출발했다. 그가 좋은 변호사였고 좋은 사람이긴 하나, 그와 그가 속한 정치세력의 이념으로 볼 때 서민 대중의 편에 서는 급진적인 대통령일 거라는 기대는 무리한 것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그런 대통령일 거라 확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대가 근거 없는 것임이 드러났을 때 제 확신을 되새기는 사람은 없었다. ‘노무현이 변했다’ ‘개혁의지가 후퇴했다’고 비난할 뿐이었다.

퇴임 후 그가 형과 부인의 비리를 시인하자 비난은 극에 달했다. 그날 한 ‘진보신문’의 사설 제목은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였다. 그러나 그의 비극적 죽음 후 모든 게 바뀐다. 노무현은 민주주의 순교자로 추앙되고 동시에 부활한다.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어!’라는 탄식은 ‘얼마나 좋은 대통령이었어!’로, 다시 ‘얼마나 좋은 정권이었어!’로 바뀐다. 문재인이니 유시민이니 노무현과 함께 몰락했던 친노세력이 일제히 되살아난 건 물론이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비극적 죽음 앞에서 그의 인간미를 새삼 되새기고 애도하는 건 품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애도가 대통령으로서 그에 대한 평가와 그 정권, 그리고 현존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를 전적으로 뒤집는 건 의식의 파탄일 뿐이다. 공화국의 시민 노릇을 하기엔 지나치게 감상적이라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역시 정치로부터 유폐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뿐이다.

정치로부터 유폐의 연원은 무엇일까. 연구자들의 좀 더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한국 시민들이 ‘정치는 내 삶을 반영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조차 실제로 체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 중요한 뼈대일 것이다.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진보정당이 약진하면서 잠시 기회가 오는 듯했지만 결국 이루어내지 못했다. 결국 정치로부터 유폐란 내 삶을 반영하지 않는 정치를 묵인하는 혹은 견뎌내는 한국 시민들의 의식적/무의식적 자구책인 셈이다. 한국 시민들에게 정치란 참여가 아니라 관람하는 것이라든가, 그들에게 정치란 과도하게 존재하면서 동시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분석은 오히려 피상적이다.

정치로부터 유폐되어 있기에 ‘역설적이게도’ 사소한 정치적 차이는 매우 의미 있는 차이가 된다. 이를테면 보수정치와 자유주의정치의 동맹체제로서 신자유주의 공세에 내몰려온 시민들에게 두 세력은 ‘차이가 없다’고 주장되어도 모자랄 것이지만, ‘매우 의미 있고 큰 차이’가 된다. 안철수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와 희망이 거대한 기대와 희망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을 무작정 냉소하고 개탄하긴 어렵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학자라는, 언제나 이상주의적 정치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정당정치를 주창한다는 노학자마저도 싱겁고 망신스럽게 휩쓸리는 지경 아닌가. 정치로부터 유폐는 차라리 한국의 ‘보편적인 정치문화’라 할 것이다.

한국 정치가 바뀌려면 이 ‘보편적인 정치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정치로부터 유폐를 스스로 해제하는 시민들로부터,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새기는 시민들로부터 시작된다. ‘정치는 내 삶을 반영해야 한다’ ‘내 삶을 반영하지 않는 의미 있는 정치란 내 삶을 기만하고 동원하려는 함정이다’ ‘정치는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지금보다 낫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정치의 주인이며 정치와 정치인의 수준은 내 정치 수준의 반영이다’ 같은 생각들을 되새기는 시민들로부터 말이다. (경향신문  - 혁명은 안단테로)
2014/07/16 23:58 2014/07/1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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