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28 14:02
(때론 매우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런저런 궁리와 논의는 접고 ‘나가자!’ 한 마디로 행동할 필요가 있을 때가 말이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그러나 오늘 ‘총파업’ 집회는 근래 있어왔던 ‘나가자!’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우리는 거대한 균열, 거대한 변화의 분기점을 통과하고 있다. 이동 중에, 거칠게나마 적어본다.)

선거부정 문제를 둘러싼 촛불집회가 지속되어 왔고 민주당도 집중 의제로 삼았지만 그 열기는 폭발적으로 확산되진 않았다. 흐름을 한순간에 바뀐 건 한 대학생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와 그를 잇는 수많은 대자보의 행렬을 통해서다. 안녕 대자보는 몇 달 전 몇몇 대학총학생회의 ‘시국선언’과 언뜻 비슷했지만 실은 매우 달랐다. ‘노동’과 ‘민영화’가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 한국 사회의 문제는 대략 ‘두 자유의 문제’라 말할 수 있다. 하나는 확보하고 지켜야할 자유고 다른 하나는 견제하고 넘어서야 할 자유다. 정치적 자유와 시장자유(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적 고통과 억압, 그리고 분노는 두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애석한 건 정치적 자유의 의제가 시장자유 의제를 흡수해버리는 일이 되풀이되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대중의 분노와 열기는 ‘민주 회복’이라는 30년 전 구호로 돌아가고 ‘정권 교체’라는 목표로 축소되어 결과적으로 민주당 따위 신자유주의의 또다른 주역인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재집권’에 이용되어 왔다.

오늘 집회가 ‘촛불집회’가 아니라 ‘총파업’이라는 사실은, 총파업이라는 말을 조끼입은 조직 노동자들끼리의 말로 여기던 사람들이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런 기만적인 반복에 균열이 생겼음을 뜻한다. 대중은 국정원 선거부정뿐 아니라 민영화를 비롯한 노동과 신자유주의 문제들이 내 삶의 문제임을 받아들이고 있고, 이 모든 문제들이 박근혜 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지배체제의 문제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이를테면 아침에 한 영화감독은 “서울광장에 나간다. 그런데 이러다 선거부정 문제가 묻히는 건 아닌가?”라고 물었다. 물론 오늘 광장엔 선거부정 문제(정치적 자유 의제)에 좀더 집중하는 사람들도 오고 민영화 문제(신자유주의 의제)에 좀더 집중하는 사람들도 온다. 그러나 중요한 건 두 문제는 적대적이지 않으며 선순위 후순위로 나눌 문제도 아니며, 무엇보다 실은 그 둘이 한 문제라는 사실이다. 생각해보자. 노동 문제와 신자유주의 문제를 덮어둔 채 공정선거가 이루어지고 국정원이 정상적 업무수행을 하면 그게 민주주의인가? 그건 민주주의의 허울을 쓴 1%의 천국, 상성왕국 현대왕국일 뿐임을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정치적 자유 의제만 부각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재집권)로 삼으려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에 이용당하는 악순환이 있어왔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의제를 분명히 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안심해도 되는 건 정치적 자유 의제를 부각하여 신자유주의 의제를 덮을 순 있지만 신자유주의 의제를 부각하는 건 너무나 당연히 정치적 자유 의제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대부분은 시민의 정체성과 노동자(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정규든 비정규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정치적 자유 의제만 부각되고 신자유주의 의제는 묻혀왔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시민의 정체성만 부각되고 노동자의 정체성은 묻혀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진중공업이나 홍대 청소노동자들 파업에 연대하는 시민들이 많았지만 그 역시 ‘시민인 내가 노동자인 그들을 돕는’ 경향이 엄존했다. “시민이 노동자의 싸움에 연대했다”는 당시 진보 언론들의 어투엔 그런 애석한 상태를 포현한다.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의 문제에 당연히 연대한 것인데 말이다. 연대를 하는 사람들이나 연대를 받는 사람들이나 똑같이 시민이며 노동자인데 말이다.  

지배체제는 과거 독재 시절엔 시민의 정체성과 노동자의 정체성을 둘 다 눌러 지배했다. 그러나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다음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민의 정체성만 부각함으로써 노동자의 정체성을 덮는 방식으로 지배해왔다. 박근혜 정권은 다시 시민의 정체성까지 억압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실에 분노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선 안 될 것은 박근혜 정권의 그런 행태는 다시 시민의 정체성만 부각하여 노동자의 정체성을 덮으려는 세력에게 빌미를 준다는 사실이다. ‘총파업’은 우리가 그런 기만을 뚫고 현실의 실체와 대면하는, 그래서 이 포악하고 기만만적인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분기점이다. 진보정치도 노직노동도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우리 스스로 말이다.

철도 민영화와 관련하여 시급한 일은 수서발 고속철의 번인 면허를 취소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도노조 파업이 승리하여 여타 민영화 작업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일 게다. 그러나 당장의 결과가 어떻든 한국 사회가, 한국의 시민이자 노동자들이 수십 년을 서성이던 거대한 벽, 현실의 실체를 막아선 포악하고 기만적인 벽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건 분명하다. 오늘 광장은 참 벅찬 광장이다.


2013/12/28 14:02 2013/12/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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