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4 21:17

안상수 씨가 ‘좌파정권 10년으로 흉악범죄와 아동 성폭력 범죄가 늘었다’고 말했단다. 좌파 정체성과 그런 범죄들을 관련짓는 것부터가 얼토당토않은 일이지만, 이른바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이가 좌파가 뭔지 우파가 뭔지도 모르니 딱한 일이다. 그런데 그건 안 씨뿐 아니라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비롯한 한국 극우세력 전반의 모습이기도 하다. 정치인입네 언론인입네 사회지도층 인사를 자처하는 아저씨들이 좌우분별조차 못하는 건 어린이교양지 발행인으로서 너무나 민망한 일이라, 조용히 설명부터 해드릴까 한다.

쉽게 말해서 우파란 현 사회체제를 옹호하는 사람이고 좌파는 현 사회체제를 뜯어고치려는 사람이다. 현 사회체제가 뭔가? 그 아저씨들은 단박에 “대한민국!” 할 테지만 그건 나라 이름이고, 현 사회체제는 바로 자본주의 체제다. 그러니까 우파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고 좌파는 자본주의 체제를 뜯어고치려는 사람들인 것이다. 물론 우파라고 해서 다 같은 우파는 아니다. 우리가 존중의 의미를 담아 말하는 우파란 적어도 자본주의 본연의 정신, 즉 수백년 전 부르주아들이 봉건사회를 무너트릴 때 내걸었던 자유정신과 시민사회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요즘 말로 하면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우파다.

그런 최소한의 상식조차 무시하면서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의 이익을 수호하는 사람들을 극우파라고 한다. 극단적인, 상종 못할 우파라는 뜻이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역사는 대체로 극우파의 역사였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반공주의를 내세운 반세기 동안의 극우정권들이다. 윤보선, 김대중, 김영삼 같은 우파들이 그들과 갈등해왔다. 그리고 극우파들은 우파들에 좌파 딱지를 붙였다. 우파에 좌파 딱지를 붙임으로써 그들을 궁지로 몰고, 또 자신들은 멀쩡한 우파인양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런 세월이 수십년 지속되면서 극우파들 스스로 그런 왜곡을 스스로 사실이라 믿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 극우파의 눈에는 상식과 양식을 가진 모든 사람은 좌파다. 그들이 종교인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을 한 명진 스님을 ‘좌파 주지’라 말하거나, 급진적인 사회운동가들에게서 체제내적 운동을 한다고 비판받는 박원순 씨를 ‘빨갱이’라고 말하는 건 악의적인 왜곡이 아니라 그들의 진심인 것이다.

극우파의 그런 무지스런 행태가 지속될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은 바로 우파들의 요상한 태도다. 언젠가부터 우파들은, 이를테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세력은 극우파의 좌파 딱지에 대해 “우리는 좌파가 아니다!”라고 항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현실적인 진보”니 “좌파 신자유주의”니 하면서 은근히 좌파 행세를 하려 들기까지 한다. 그건 일종의 사회심리학적 코미디인데,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전에 좌파였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신념을 포기하고 전향했다’고 말하기 보다는 ‘내가 달라진 게 아니라 세상이 달라졌고 나는 달라진 세상에서 여전히 좌파적 실천을 한다’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어쨌거나, 그렇게 극우파와 우파가 우파와 좌파 역할을 갈라 맡는 바람에 녹아나는 건 좌파들이다. 극우파가 지배하던 반세기 동안은 아예 입도 뻥긋하기 전에 간첩으로 몰려 박멸되어야 했고, 민주화가 된 다음엔 우파들이 좌파 노릇을 대신하는 바람에 투명인간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좌파가 녹아나니 좌파가 대변해야 할 서민대중의 삶이 녹아나고... 서민대중의 삶이 녹아나니 나라의 미래가 안 보이고... 좌우분별조차 없는 이 나라를 대체 어찌할까나. (한겨레)

2010/03/24 21:17 2010/03/2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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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김규항의 '좌우분별조차 없는'에 대해

    Tracked from phlip의 홈페이지 2010/03/28 13:17  삭제

    또 김규항선생 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우선, 사실관계를 하나 짚어보자. 과연 우파, 김대중 노무현 정권세력이 좌파 행세를 하려 들었던가? 여기서 전가의 보도로 나오는 단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