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3 14:23

김건이 웬일로 이번 중간고사는 열공을 해보겠다고 했다. 녀석은 1학기 중간고사에 비해 기말고사에서 평균점수가 20점이나 떨어져서, 제 아비에게서 “좀 심한 거 아니냐?”라는 핀잔을 들은 바 있다. 어쨌거나 지가 알아서 문제집도 풀고 하는데, 그저껜 틀린 문제를 살펴보는 걸 옆에서 좀 거들어 주었다. 워낙 느긋한 성격이라, 몰라서 틀리는 경우보다는 문제를 대충 읽어 틀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아 적이 흐뭇해하면서 보아 가다 한 문제에서 뒤집어졌다. 고추잠자리가 ‘나’로 의인화되어 “걱정 마세요, 난 나뭇가지에 앉아 있으면 다들 단풍잎인 줄 알아요.” 어쩌고 하는 지문이다. 문제는 고추잠자리와 단풍잎은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인가? 답은 당연히 붉은 색. 그런데 김건은 답란에 “돌연변이”라고 적어놓았다.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이 바보야. 단풍잎이 나뭇잎의 돌연변이고 고추잠자리는 잠자리의 돌연변이냐?” 손가락으로 김건의 옆구리를 찌르니 간지럼을 많이 타는 녀석은 금세 떼굴떼굴 방바닥을 구른다. 밤에 혼자 그 일에 대해 생각했다. ‘공부를 잘 한다는 건 결국 시험을 잘 본다는 것이고, 시험을 잘 본다는 건 시험 문제를 많이 맞힌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험 문제를 맞힌다는 건 그 문제가 묻는 지식을 가진 것이기도 하지만 그 문제가 어떤 답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기도 하다. “돌연변이”라는 답은 분명히 틀린 답이지만, 그런 답을 적는 생각까지 틀린 건 아니다. 물론 “돌연변이”라고 쓰는 아이를 “붉은색”이라고 써서 점수를 더 얻게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점수를 더 얻는 대신 꼭 그만큼의 손실이 있을 것이다. 개성과 상상력이 그만큼 깎여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제 나름의 개성과 상상력이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나는 김건이 공부를 아주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대신, 녀석의 “돌연변이”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흥미롭게 지켜보기로 했다.

2008/10/23 14:23 2008/10/2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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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돌연변이

    Tracked from 커피믹스 끊는 인간은 독종 2008/10/23 18:18  삭제

    김규항 블로그 죽돌이로 살다가 안간지가 좀 됐다.일단 똑같은 얘기를 반복 하는게 좀 지겨웠다.개혁과 진보는 다르다니까!김규항은 이 말을 거의 2년 정도 한 것 같다. 물론 100% 맞?

  2. Subject: Ru의 생각

    Tracked from pimmcine's me2DAY 2008/10/23 22:22  삭제

    좋은 아버지건, 좋은 감독이던, 좋은 사람이건,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3. Subject: 돌연변이

    Tracked from 별들이 흘러간 자리.. 2008/11/12 23:42  삭제

    돌연변이 - 김규항 (www.gyuhang.net) 김건이 웬일로 이번 중간고사는 열공을 해보겠다고 했다. 녀석은 1학기 중간고사에 비해 기말고사에서 평균점수가 20점이나 떨어져서, 제 아비에게서 “좀 심한

  4. Subject: london massage

    Tracked from london massage 2014/11/10 20:58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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