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27 17:57
메신저 창에 ‘조폭소녀’가 접속을 해왔다. 김단(열살 먹은 내 딸)이다. ‘이 녀석은 제 별명을 만족해하는군.’ 나는 혼자 조용히 웃었다. 몇 달 전 나는 김단이 제 동무들, 특히 남자 동무들 사이에서 ‘조폭소녀’라 불린다는 걸 알았다. 겉모습에서부터 하고 노는 짓까지 여느 여자아이들과 다를 게 없는 김단은 유독 ‘남자의 폭력’ 앞에선 자못 전사로 변한다고 했다. ‘잘 가고 있군.’ 나는 그때도 혼자 조용히 웃었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물리적으로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저런 전문가들이 이런저런 장황한 분석을 내놓곤 하지만, 이유는 실은 단순하다. 물리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여자는 남자보다 물리적으로 약하며,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물리적 폭력은 대개 남자의 선택 사항이다. 여자는 물리적으로 당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침묵하고 살 건지 제 자존을 되찾기 위해 싸울 것인지 선택하게 된다. 물론 싸워야 하고 싸우는 건 침묵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은 건 처음부터 물리적으로 당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기는 ‘약한 인간인 여자’가 적어도 10년 이상의 철저하고 조직적인 교육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한 여자 아이는 그의 유년기와 소년기 동안 ‘여자다움’이라 설명되는 철저하고 조직적인 교육을 통해 ‘약한 인간인 여자’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약함은 모든 사회적 억압과 차별의 공식적인 근거가 된다. 강한 인간(남자)은 약한 인간(여자)을 당연히 다스리며 고작해야 ‘보호’하는 것이다.

변화는 ‘여자답게 키우는 일’과 ‘약한 인간인 여자, 남자에게 물리적으로 당하는 여자로 키우는 일’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지난 10년 동안 나름대로 실천해왔다. 그 실천이란 그저 소박한 것이다. 김단이 말귀를 알아먹을 무렵부터 ‘남자들의 세상’에 대해 토론식의 대화를 한 것(이젠 그런 토론을 한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김단에게 몇 가지 무술을 맛보게 했고 제가 고른 태권도를 꾸준히 하게 한 것(끼니는 건너도 태권도는 빠지지 않으려 들만치 김단은 열심이다. 몸에서 밀리면 모든 것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쩌다 김단이 대수롭지 않은 일로 눈물이라도 보이면 “여자라서 우는 거냐?” 야비하게 빈정거리는 것(모든 눈물을 빈정거리는 건 아니다. <레미제라블>에서 판틴이 죽을 때, 나는 내 눈물을 감추며 김단의 눈물을 슬쩍 확인하는 것이다.) 따위다.

그런 소박한 실천들은 내 일상에 어떤 부담도 주지 않는다. 앞으로 10년 더 하는 것 역시 별 부담이 없다. 그러나 오늘 김단이 ‘조폭소녀’라 불리고 자신이 ‘조폭소녀’라 불린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 그리고 내가 김단이 ‘약한 인간’ 아니 아니라 ‘대등한 인간’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분명한 성과인 셈이다. 이런 얘기를 듣던 어떤 이가 참으로 근심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김단이 남성적인가요.”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김단은 인간적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내 진정한 바람이다. 김단이 남자에게 당하고 사는 것도 심란하지만, 김단이 남자놈들이 하던 못된 짓을 해보는 게 유일한 목표인 ‘치마 두른 마초’가 되거나 세상을 성기로만 구분하는 ‘파시스트 여성주의자’가 된다는 건 또 얼마나 심란한가.)

오랜 만에 한가로이 소파에 늘어져 있는 내게 김단이 다가왔다. “아빠.” “응.”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응, 나 나중에 결혼 해 안 해.” “그걸 지금 결정해야 해.” “그냥, 생각나서.” “김단의 결혼이야 김단이 알아서 할 일이지.” “맞아.” 조폭소녀. 나를 아빠라 부르는 긴 머리의 여자가 씩 웃으며 돌아섰다. (씨네21)
2003/04/27 17:57 2003/04/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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