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31 10:17
(참세상 게시판 답변으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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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극우 이념과 파시즘의 기초이기도 한 민족주의는 남한에서 진보적인 함의를 가져왔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36년 동안 지배되었던 경험과, 지난 50여년 동안의 분단 상황과 관련한 것이다. 일제에 대한 독립은 당시 진보 세력에게도 가장 중요한 과제였고 수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보다 실천적인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해방이 곧 분단으로 귀결된 후, 적어도 남한에서 민족주의는 분단 체제 자체를 부인하는 불온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남한 지배계급은 민족이니 통일이라는 말을 지배체제 내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했다. 다른 말로 하면, 민간 영역에서 자주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민족이나 통일은 지배계급과 충돌하는 매우 진보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남한에서 민족주의가 미국과 관련을 맺게 된 건, 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다. 광주항쟁 무렵까지 남한의 사회운동이란 진보적 변혁운동이 아니라 극단적인 군사파시즘을 반대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남한의 사회운동 세력은 반미를 포함하지 않았고, 미국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남았다. 광주항쟁이 참혹하게 진압된 후 비로소 남한의 사회운동세력은 광주에서 미국의 역할을 파악했다. 반미 구호가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이던 남한에서 반미 구호가 터지기 시작했다. 반미는 미국을 반대한다는 의미와 함께, 남한 사회운동세력의 성역이 사라졌다는 의미를 가졌다. 남한 사회운동세력은 급속히 진보적 변혁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런 변혁운동의 흐름은 적어도 90년대 초반 동구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무너질 때까지 활발했다. 오늘 남한에서 반미 의식은 보편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그런 변화는 단지 쇼트트랙 경기 사건이나 여중생 압사사건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그런 일은 지난
50여년 동안 수없이 반복되어 왔고, 철저히 외면되어 왔다) 광주항쟁의 경험에서 시작한 반미의식이 결국 대중영역으로 확산되는 현상이다. 오늘 남한에서 반미의식은 정당한 것이고 진보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계급이라는 체로 걸러질 때만 그렇다. 반미의 대상은 미국인 전체가 아니라 미국의 지배계급,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끝없는 전쟁을 통해 제3세계 민중의 피를 빠는 미제국주의자들이다. 부시와 미국 노동자들은 전혀 하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정주영과 남한 노동자들은 전혀 하나가 아니다. 정주영이 사망하자, 민족통일 문제에 집중한다는 일부 진보운동 세력은 그의 통일 업적을 칭송했다. 정주영은 통일 업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통일운동의 업적마저 돈으로 구입한 사람이다. 계급이라는 체로 걸러지지 않을 때, 민족은 짐짓 반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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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한국의 진보운동 세력은 계급 문제에 집중하는 민중민주(PD) 세력과 민족/통일 문제에 집중하는 민족해방(NL) 세력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두 세력은 ‘노선이 다른 동료’로서 존재하지만, 일부에선 ‘적보다 노선이 다른 동료를 더 적대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90년대 초반에 이르러 동구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자, 스탈린주의의 자정 능력을 갖지 못한 민중민주 세력은 급속히 세를 잃었고, 전반적인 우경화 바람은 민족해방 세력에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 10여년이 지나, 오늘 시점에서 민족과 통일을 말하는 것은 여전히 정당한 것이지만, 무조건적으로 북한정권을 좇는 일부 경향은 그 자체로 반동적이다. 나는 북한 체제가 일제 부역자 처리 문제를 비롯하여 그 출발부터 적어도 남한 체제보다는 정당했다고 생각하고, 이른바 주체 사상 역시 미제국주의와 적대적 긴장을 유지해 온 북한의 특별한 상황과
관련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북한에 대한 평가도 신중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북한에 대해 극히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북한의 문제를 북한과 다른 체제의 잣대(흔히들 북한의 인권을 말하지만, 거주 이동의 자유나 사적 소유의 자유 따위 자유권들은 실은 매우 자본주의적인 개념이다)로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의 진보운동 세력이 북한 정권(은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 정치인들이다.)의 입장을 무원칙하게 좇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도 존중하기 어렵다. 그런 종북적 태도의 기본적인 모순은, 신념과 원칙을 기반으로 행동해야 하는 진보활동가가, 때로는 당연히 신념과 원칙을 벗어나서 행동해야 하는 현실 정치인들을 무작정 따르는 데 있다. 그런 종북적인 경향은 민족 해방 세력에 대한 무분별한 폄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계급에 집중하는 사람들과 민족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진지한 고민없이 서로 반목하는 것은 진보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민족이나 통일 얘기를 하면 저거 주사파군 한다거나, 계급 이야기를 하면 저거 피디군 하는 식은 전혀 진보운동과 관계가 없는 인간적 경박함이다. 제 아무리 잘못된 편향이 실재하고 또 서로 비판하더라도, 남한의 진보 운동이 계급과 민족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우리의 선배/어른들에게서 피디니 엔엘이니 하는 구분을 무색케 하는 차원을 가진 분들을 볼 수 있다. 언뜻 떠오르는 대로 말하자면, 백기완 선생이나 홍근수 목사, 또 서준식, 채만수 선생 같은 분들이다. 그들은 피디의 입장에서나 엔엘의 입장에서나 기꺼이 존경할 만한 분들이고, 우리에게 성숙한 진보주의자의 차원을 몸소 보여주는 분들이다. 경박한 반목에 대한 우리의 고민은 그런 실재하는 인간들에게서 배우는 일로 풀 수 있다. 경박함은 사상이나 이념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3
확산되는 반미의식이 두리뭉실한 감정 표출이 아니라 정확한 대상으로 집중되어 진보적인 함의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진보주의자의 당연한 임무일 것이다. 우리는 두리뭉실한 반미감정이 자칫 엉뚱하게 사용될 수도 있음을 ‘반일감정’을 돌이켜 봄으로써 알 수 있다. 알다시피, 반일감정은 일제에 의한 36년 동안의 침략 경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은 일본 민족과 한국 민족 사이의 일이 아니라, 일본 지배세력(제국주의세력)과 한국 민중 사이의 일이었다. 한국의 지배새력은 대개 그 시기에도 안락했으며, 반대로 일본 민중들은 한국 민중들과 다를 바 없이 수탈당하고 전쟁에 끌려나가 죽어야 했다. 분단 이후 남한 체제는 일제 부역자들을 골간으로 출발했고, 박정의 이후 군사독재 정권들은 일본 극우세력(제국주의세력)의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왔다. 그러나 남한의 지배세력은 줄곧 일체의 일본 것을 금하는 반일정책을 고수해왔다.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독도 망언이나 공중파 뉴스에서 주기적으로 기획되는 ‘젊은이들의 왜색’ 기사 따위들만으로 남한 지배세력은 남한 민중의 두리뭉실한 반일감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배세력은 매우 효율적으로 민중들의 반일감정을 관리할 수 있었다. 독도에 그렇게도 흥분하는 사람들은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해선 어땠는가.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울부짓는, 이젠 늙고 병들어 몇 남지 않은 그들에겐 말이다. 민족주의는 어떤 계급에게 사용되는가가 문제다. 계급이라는 체로 걸러지지 않을 때, 민족은 짐짓 반동적이다
2002/07/31 10:17 2002/07/3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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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thai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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